히브리서 11장 8-1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히브리서 11:8-12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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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8-12절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고, 장막에 머물고, 늙은 나이에 자손을 얻은 일을 '믿음'의 본보기로 든 구절이다. 순종과 약속에 대한 신뢰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믿음장'이라고 불린다. 11장 1절에서 믿음을 정의한 뒤, 구약 인물들의 이야기를 "믿음으로…"라는 말로 차례로 늘어놓는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수신자는 박해와 낙심 속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던 그리스도인들로, 주로 유대계 신자로 이해된다.
이 단락은 아브라함 이야기(창세기 12-22장)를 세 장면으로 요약한다.
10절의 "터가 있는 성"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히브리서 11장 13-16절의 "하늘에 있는 본향"과 이어진다.
해석
- 순종하는 믿음으로 읽기: 여러 교단의 주석과 설교가 이 구절을 이렇게 읽는다. 믿음은 결과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신뢰하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뜻이다. "미쁘신 줄 앎이라"(11절)는 '신실하신 분으로 여겼다'는 뜻이며,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성품에 있음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 나그네와 하늘 도성으로 읽기: 아브라함이 땅을 받고도 장막에 머문 것은 그의 소망이 이 땅 너머의 성을 향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읽기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순례자'로 설명하는 근거로 쓰인다.
- 언약신학과 세대주의의 읽기: 언약신학을 따르는 쪽은 이 구절을 근거로, 땅의 약속이 결국 하늘 도성에서 성취된다고 본다. 세대주의 쪽은 하늘 도성에 대한 소망을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에게 준 땅의 약속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본다.
논쟁과 쟁점
- 11절의 주어 문제: 11절 원문에는 '씨를 두는 힘'이라고 옮길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이는 보통 남성의 생식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와 영어 번역본(예: NRSV)은 아브라함을 주어로 보고, 사라에 대한 언급은 삽입구로 처리한다. 개역한글은 사라를 주어로 옮겼다. 사본에 따라서도 사라를 꾸미는 말이 있고 없음이 달라, 이 해석 문제와 얽혀 있다.
- 사라의 웃음과의 관계: 창세기 18장에서 사라는 약속을 듣고 웃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그녀를 믿음의 본보기로 든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에서 믿음으로 옮겨 간 과정을 요약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 문맥을 떠난 인용: "갈 바를 알지 못하고"를 앞뒤 따지지 않고 결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말로 쓰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이 구절의 초점은 불확실성 자체가 아니라 약속에 대한 신뢰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별과 모래"를 물질적 번성의 약속으로 읽는 것에 대해서는 번영신학적 적용이라는 비판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는 선교사 파송, 개척교회 설립, 이민이나 진로를 앞둔 상황의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함께 읽을 구절
- 창세기 12:1-4 (아브라함을 부르심)
- 창세기 15:1-6 (하늘의 별 같은 자손의 약속)
- 창세기 18:10-14 (사라에게 주신 약속)
- 로마서 4:18-21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약해지지 않은 믿음)
- 히브리서 11:13-16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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