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7-18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3:17-18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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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들을 보낸 목적이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데 있으며,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요한복음 3:16과 함께 구원과 심판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요한복음 3장 앞부분은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예수는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어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일(민수기 21장)에 자신이 들릴 것을 빗대고, 16절에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사랑을 말한다. 17-18절은 그 사랑의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밝히고, 믿음과 믿지 않음이 심판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한다.
고대 사본에는 따옴표가 없어서 대화가 어디서 끝나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16-21절을 예수의 말이 이어진 것으로 읽는 학자도 있고, 복음서 저자가 덧붙인 해설로 읽는 학자도 있다.
해석
- 보냄의 목적에 대한 읽기: 17절은 아들을 보낸 목적이 세상을 정죄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2:47에도 같은 취지의 말이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 9:39에서는 예수가 "심판하러" 왔다고 말한다. 많은 주석가는 이 두 말을 목적과 결과로 나누어 설명한다. 오신 목적은 구원이지만, 빛이 왔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그 자체로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19절).
- "벌써 심판을 받은 것"에 대한 읽기: 이 표현을 미래의 최후의 심판이 현재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있다. 영국 신약학자 C. H. 도드의 '실현된 종말론'(종말의 일이 이미 현재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과 자주 연결된다. 다른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마지막 날의 심판도 함께 말한다는 점(요한복음 5:28-29)을 들어, '이미'와 '아직'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본다. 이 논의는 종말론과 이어진다.
- 개혁주의 전통의 읽기: 사람은 죄 때문에 이미 정죄 아래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문다고 본다. 같은 장의 36절이 근거로 함께 인용된다.
- 아르미니우스주의·웨슬리 전통의 읽기: 17절의 '세상'을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뜻으로 읽는다. 그리고 18절에서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할 책임을 강조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 번역: 헬라어 동사 '크리노'는 '심판하다'와 '정죄하다'를 모두 뜻할 수 있다. 영어 번역 가운데에는 '정죄하다'(condemn)로 옮긴 것도 있다. 한국어 개역 성경은 '심판'으로 옮겼다.
-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18절은 믿지 않음을 판단의 근거로 든다. 그래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물음이 이 구절과 함께 논의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구원의 길로 보는 견해, 그리스도의 구원이 다른 방식으로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견해 등이 있다. 한국의 복음주의 교단들은 대체로 종교다원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혀 왔다.
- 두 절을 함께 읽기: 17절만 떼어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거나, 18절만 떼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데 쓰는 것은 문맥을 벗어난 인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요한복음 3:16은 한국 교회에서 가장 널리 암송되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17-18절은 그 뒤를 잇는 구절로 함께 봉독되거나 설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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