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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1장

성경 · 장 개요 · 같은 말: 전 11장

전도서 11장은 앞날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아낌없이 나누고 부지런히 씨를 뿌리라고 권한다. 이어 청년에게 젊음을 즐거워하되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전도서 12장 가운데 열한 번째 장이다. 전도서 10장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견주는 짧은 격언을 모아 놓았다. 11장은 사람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러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권한다. 이 권고는 전도서 12장 첫머리의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로 이어진다.

흐름

  • 1-2절 식물(개역개정은 '떡')을 물 위에 던지고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라고 권한다. 땅에 어떤 재앙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3-5절 비를 머금은 구름이나 쓰러진 나무처럼 사람이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람과 구름만 살피는 사람은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못한다. 사람은 바람의 길도, 태 속 아이의 뼈가 자라는 과정도 모르듯이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
  • 6절 그러므로 아침에도 저녁에도 씨를 뿌리라고 한다. 어느 쪽이 잘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 7-8절 빛과 해를 보는 즐거움을 말한다. 오래 살면 늘 즐거워하되 캄캄한 날이 많을 것도 생각하라고 한다.
  • 9-10절 청년에게 젊은 날을 즐거워하고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르라고 한다. 다만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을 알라고 덧붙인다. 근심과 악을 떠나보내라고 하며, 어린 때와 청년의 때도 헛되다고 말한다.

핵심 구절

  • 전도서 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내어놓으라는 권고다. 구제와 나눔을 말하는 구절로 널리 인용된다.
  • 전도서 11:6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 하나님의 일을 다 알 수 없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를 요약한다.
  • 전도서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 하나님이 … 심판하실 줄 알라" — 삶의 기쁨과 책임을 함께 말하는 전도서의 특징이 드러난다(전도서 11장 9-10절 참고).

등장 인물과 장소

본문에 이름이 나오는 인물이나 장소는 없다. 말하는 이는 1장부터 이어지는 '전도자'(히브리어 '코헬렛', 회중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은 이 사람을 솔로몬으로 여겨 왔으나, 책이 후대에 쓰였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9절에서는 '청년'을 직접 부른다.

읽을 때 생각할 점

  • 1-2절: 두 가지 해석이 함께 전해진다. 하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구제로 읽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 건너 무역에 투자하고 위험을 나누라는 실용적 조언으로 읽는 해석이다. 구제로 읽는 쪽은 잠언 11장 24-25절, 고린도후서 9장 6-8절과 함께 읽는다.
  • 5절: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과 '영(생기)'을 모두 뜻한다. 그래서 번역에 따라 "생기가 태아의 뼈에 들어가는 길"로 옮기기도 한다. 바람의 길을 알 수 없다는 표현은 요한복음 3장 8절과 견주어 읽히곤 한다.
  • 6절: 결과를 모른 채 계속 심으라는 권고는 갈라디아서 6장 8-10절의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와 함께 묵상되는 일이 많다.
  • 9절: 즐거움을 권하는 말과 심판 경고가 나란히 놓여 있어 해석이 갈린다. 쾌락을 좇는 삶을 꼬집는 반어로 보는 해석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되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진지한 권고로 보는 해석도 있다. 심판에 관한 말은 책의 결론인 전도서 12장 13-14절로 이어진다.
  • 10절: '헛되다'로 옮긴 히브리어 '헤벨'은 본래 입김이나 안개를 가리킨다. 그래서 '무의미하다'보다 '덧없다, 금세 지나간다'는 뜻으로 읽기도 한다.

한국 교회에서

1-2절은 구제나 선교를 다루는 설교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9-10절은 12장 1절과 함께 청년부 예배나 수련회 설교에서 젊은 날의 기쁨과 책임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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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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