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크랜턴
인물 · 같은 말: 스크랜턴
윌리엄 스크랜턴(1856~1922)은 미국 북감리교회가 보낸 의료 선교사이자 목사이다. 시병원을 세웠고 상동·아현·동대문교회의 설립에 참여했다.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세웠다.
생애
1856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외가는 감리교 목사를 여럿 낸 집안이었고,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은 감리교 해외 선교 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했다. 예일대학교와 뉴욕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로 개업했다. 처음에는 조선 선교 제안을 거절했으나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4년 10월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회는 헨리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을 조선 선교사로 임명했다. 스크랜턴은 아펜젤러보다 먼저 선교사로 파송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85년 5월 3일 제물포에 도착해 감리교 선교사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에 들어갔다. 어머니도 같은 해 6월 조선에 왔다.
1907년 선교 정책을 놓고 해리스(Merriman C. Harris) 감독과 갈등을 빚었고, 그 결과 선교사직과 감리교 목사직을 함께 내려놓았다. 그 뒤 성공회로 교적을 옮겨 평신도로 지냈다. 평안북도 운산의 미국인 소유 금광에서 의사로 일하기도 했다. 1916년 조선을 떠나 중국 다롄으로 갔고, 1917년 일본 고베로 옮겨 의사로 일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폐렴을 앓다가 1922년 3월 23일 고베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고베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사역과 업적
- 의료 선교: 처음 한 달여 동안 호러스 알렌이 운영하던 제중원에서 진료를 도왔다. 1885년 9월 10일부터는 서울 정동의 자기 집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 진료소가 감리교 최초의 선교 병원인 시병원(施病院)으로 발전했다. 병원 이름은 고종이 내려 준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시기는 1886년과 1887년 무렵으로 자료마다 다르다. 1887년에는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이 문을 열었다. 또 성문 밖 여러 곳에 시약소(약을 나누어 주는 진료소)를 두어 가난한 환자를 돌보았다.
- 교회 개척: 시약소에 성경과 전도 책자를 두고 전도인을 머물게 했다. 이것이 교회 개척으로 이어져 상동교회(1888년 창립), 아현교회, 동대문교회의 설립에 참여했다. 1893년에는 상동교회의 담임목사를 맡았다.
- 성경 번역: 성서번역위원회 위원으로 한글 성경 번역에 참여했다.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
메리 플레처 벤턴 스크랜턴(1832~1909)은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쉰을 넘긴 나이에 조선에 왔다. 1886년 서울 정동에서 학생 한 명으로 여학교를 시작했다. 이듬해 조선 정부가 이 학교에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 이화학당은 오늘날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이며, 유관순의 모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여성 교육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학생을 모으기가 매우 어려웠다. 메리 스크랜턴은 이후에도 수원의 삼일소학당 등 여러 여학교를 세우거나 설립을 도왔고, 1909년 10월 8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스크랜턴 모자는 의료와 여성 교육을 앞세워 서울에서 감리교 선교의 기반을 닦았다. 서울 서쪽·남쪽·동쪽에 세운 시약소와 교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주요 교회들의 뿌리가 되었다. 상동교회에서는 전덕기 등 교회와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이 그의 영향 아래 자랐다.
평가
스크랜턴은 서울 감리교 선교의 실질적인 개척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1907년 감리교를 떠난 뒤 오랫동안 감리교 안에서도 잊힌 인물이 되었다. 사임에는 동료 선교사들과의 갈등, 해리스 감독과의 불화가 얽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구체적인 경위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별세 100주년인 2022년,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고베에 있는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12곳
- 윌리엄 스크랜턴 - 위키백과
- 메리 스크랜튼 - 위키백과
- 이화학당 - 위키백과
- 근대 교육 -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 윌리엄 스크랜턴의 생애와 의료활동에 관한 연구 - KCI
- 불꽃같은 선교사, 육신은 쓰러져도 복음의 열매는 영원해 - 아이굿뉴스
- 조선에 온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의료 사역 - 웨슬리안타임즈
- [아펜젤러 행전] 병든 조선인들의 육신과 심령을 구원한 스크랜턴 - 선교신문
- 낮은 데로 임한 스크랜튼의 의료선교와 시병원 - 미디어스
- 고베 이진칸: 리니 데이비스와 윌리엄 스크랜턴 - 교회와신앙
- 비운의 엘리트 선교사 스크랜턴 - 당당뉴스
- 미 선교사 스크랜턴 유해 한국 온다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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