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시보로
인물 · 성경 인물
오네시보로는 디모데후서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로, 바울이 로마에서 갇혀 있을 때 그를 찾아가 돌본 인물이다. 바울은 그와 그의 집안을 위해 주의 긍휼을 빌었다.
성경의 기록
오네시보로는 디모데후서에만 두 번 나온다. 이름은 헬라어로 '유익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1:15에서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쓰고 부겔로와 허모게네의 이름을 든다. 이어 디모데후서 1:16-18에서는 오네시보로를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로 소개한다. 바울에 따르면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자주 "유쾌케"(새 힘을 얻게) 하였고,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로마에 와서는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 만났다. 바울은 그가 에베소에서 여러 모로 섬긴 일을 디모데도 잘 안다고 덧붙인다.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빌고, 오네시보로 자신도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기를 기도한다.
디모데후서 4:19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고 부탁한다. 두 구절 모두 그를 '집'과 함께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집안은 에베소에 있었던 것으로 흔히 추정한다. 그 밖의 생애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옥에 갇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때에도 그를 찾아가 곁에 머문 신실한 동역자의 본보기로 그려진다. 이름이 비슷한 오네시모와는 다른 인물이다.
해석과 논점
바울이 오네시보로 본인이 아니라 "그의 집"에 문안하고, 그를 위해 "그 날", 곧 심판의 날의 긍휼을 비는 점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 일부 학자와 천주교 전통에서는 이 무렵 오네시보로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보고, 이 구절을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한 예로 읽기도 한다.
-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본문이 그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가 여행 중이어서 집에 없었을 수 있고, 바울의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축원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근거로 삼는 것에 반대한다.
2세기 무렵 쓰인 것으로 알려진 외경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서는 오네시보로가 이고니온에서 바울을 자기 집에 맞아들인 사람으로 나온다. 바울의 외모를 묘사한 대목도 이 책에 실려 있다. 정교회 전통은 그를 성인으로 기념하며 칠십 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성경 본문이 아니라 후대 전승에 속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설교에서 오네시보로는 흔히 '부끄러워하지 않은 사람', 고난받는 지도자와 이웃을 찾아가 위로한 섬김의 본보기로 소개된다. 이런 설교에서는 심방과 갇힌 이를 돌보는 일을 권면할 때 그의 이야기가 인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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