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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8장 2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에스겔 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가 돌이켜 살기를 바란다고 밝히는 에스겔서의 말씀이다. 회개를 촉구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고, 예정론 논쟁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두고 여러 교단이 함께 다루는 구절이다.

문맥

에스겔 18장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자 에스겔이 전한 말씀이다. 당시 백성 사이에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이 돌았다(에스겔 18:2). 조상의 죄 때문에 자신들이 벌을 받는다는 체념이 담긴 말이다. 하나님은 이 속담을 더는 쓰지 말라고 하며, 각 사람이 자기 행위에 따라 판단받는다고 선언한다(에스겔 18장 2-4절, 에스겔 18장 19-20절).

21~22절은 악인이 죄에서 돌이키면 살고 지난 죄가 기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23절은 그 이유를 수사 의문문(답을 정해 두고 던지는 물음)으로 밝힌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악인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돌이켜" 사는 것이다. 같은 취지가 18장 끝(에스겔 18장 30-32절)과 33장 11절에서 되풀이된다.

해석

  • 구약 본문 중심의 읽기: 많은 구약학자는 이 구절을 포로기 백성의 운명론을 깨뜨리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본다. 여기서 "삶"과 "죽음"은 일차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생명과 받는 심판을 가리킨다. 그래서 개인의 영원한 구원 문제를 직접 다루는 말씀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의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 전통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쪽은 이 구절을 디모데전서 2:4, 베드로후서 3:9와 함께 읽는다. 이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진심으로 원한다는 근거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부 사람을 조건 없이 멸망하도록 정했다는 이해와는 조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 개혁주의의 읽기: 장로교 등 개혁주의 전통도 하나님이 죄인의 죽음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회개의 부름이 진실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장 칼뱅은 이 구절을 설명하며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회개하라는 부름)과 사람에게 감추어진 작정을 구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혁주의는 이 구별을 근거로 예정론과 이 구절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

논쟁과 쟁점

이 구절은 예정과 자유의지 논쟁에서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양쪽이 모두 다루는 대표 구절이다. 아르미니우스주의 쪽은 하나님의 뜻을 둘로 나누는 설명이 본문의 단순한 의미를 약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칼빈주의 쪽은 로마서 9장 같은 본문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반론한다. 한편 이 구절을 예정 논쟁의 증거 구절로만 쓰면 포로기 공동체를 향한 본래 문맥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교단을 가리지 않고 회개와 전도를 촉구하는 설교에서 에스겔 33:11과 함께 인용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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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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