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장 8-9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베드로후서 3:8-9,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주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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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재림 지연에 대한 대답이며, 창조의 하루 길이와 종말 계산 논쟁에도 끌려 들어오는 구절이다.
문맥
베드로후서 3장은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3:4)며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답하는 단락이다. 그들은 조상들이 잠든 후에도 만물이 처음과 같이 그대로 있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홍수로 심판하셨음을 상기시키고(3:5-7), 8절에서 시편 90편 4절을 끌어와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한다. 9절은 지연의 이유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설명하고, 10절은 그래도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라고 경고한다.
해석
- 재림 지연에 대한 신학적 답변: 하나님은 시간에 매이지 않으시므로 사람이 보기에 늦어 보이는 것은 지연이 아니며, 그 기간은 회개를 기다리시는 은혜의 시간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전통이 이렇게 읽는다.
-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9절은 디모데전서 2장 4절과 함께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말하는 본문으로 인용된다. 아르미니우스 전통은 모든 사람을, 칼빈주의 일부는 문맥상 "너희", 곧 택함받은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읽는다.
논쟁과 쟁점
8절은 본래 시간의 상대성을 말하는 비유이지만, 여러 계산의 근거로 쓰여 왔다. 초대 교회의 일부 문서는 창조의 엿새를 육천 년 역사로 보고 그 뒤에 천년의 안식이 온다는 해석을 남겼으며, 이런 계산은 후대의 재림 날짜 예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창조와 진화 논쟁에서는 창세기의 하루가 긴 시대일 수 있다는 '날-시대 이론'의 근거로 쓰이고, 젊은 지구 창조론 쪽은 이 구절이 창세기의 날 길이와 상관없다고 반박한다. 주요 교단들은 이 구절로 종말의 연대를 계산하는 것을 문맥을 벗어난 사용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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