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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4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태복음 25:40,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양과 염소의 비유,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임금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가난한 이를 섬기는 일의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며,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문맥

감람산 강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에 이어, 인자가 영광 가운데 와서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로 나누듯 심판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임금은 오른편의 사람들에게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았다고 말한다. 그들이 언제 그랬느냐고 묻자 40절의 대답이 나온다. 왼편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한다(25:45).

해석

  • 모든 가난한 이로 읽기: '지극히 작은 자'를 굶주리고 병들고 갇힌 모든 사람으로 보고,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읽는다. 천주교 사회교리와 많은 개신교 사회봉사 전통, 해방신학이 이 읽기를 강조한다.
  • 제자들로 읽기: 마태복음에서 "내 형제"는 대개 예수의 제자를 가리키고(12:49-50, 28:10), 제자를 대접하는 일에 대한 상급을 말한 10:40-42와 연결해, 세상 민족들이 복음을 들고 온 제자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로 심판받는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일부 복음주의 학자들이 이 읽기를 지지한다.

논쟁과 쟁점

이 비유는 심판이 행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 칭의 교리와의 관계가 물음이 된다. 개신교는 대체로 이 행위들을 참 믿음의 열매로 보고, 의인들이 자신이 한 일을 알지도 못했다는 점(25:37-39)에서 공로를 의식한 선행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천주교는 사랑의 행위가 구원에 실제로 참여한다는 점을 더 강조한다.

한국 교회에서

교회의 구제와 사회봉사, 노숙인·이주민·수용자 사역, 의료 선교의 근거 본문으로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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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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