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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9장 17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을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일에 빗댄 잠언의 격언이다. 구제를 권하는 대표 구절로 자주 인용되며, '갚아 주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논의된다.

문맥

잠언 10장 1절부터 22장 16절까지는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제목 아래 서로 독립된 짧은 격언들을 모은 부분이다. 이 구절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앞뒤 구절과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줄로 완결된 격언이다.

잠언은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여러 차례 하나님과 연결한다. 잠언 14장 31절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을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일로 본다. 이 구절은 반대로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을 하나님께 하는 일로 표현한다.

"불쌍히 여기다"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은혜를 베풀다', '호의를 보이다'라는 뜻이다. 마음으로 동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돕는 행동을 가리킨다. "꾸이다"는 오늘날 '빌리다'로 오해되기 쉽지만 여기서는 '빌려 주다'라는 뜻이다. 가난한 이는 갚을 능력이 없으나 하나님이 대신 빚진 이가 되어 갚으신다는 비유다.

해석

  • 하나님과 가난한 이의 연대로 보는 읽기: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자기 일로 여기신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흔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마태복음 25장 40절과 나란히 읽는다.
  • 보상의 약속으로 보는 읽기: 구제가 손해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약속으로 읽는다. 갚으시는 때와 방식은 이 땅에서 받는 복으로 보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 때의 상으로 보기도 한다.
  • 유대교 전통의 읽기: 랍비 문헌에서는 이 구절이 구제를 하나님께 빌려 드리는 일로 이해하는 근거로 인용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교단 사이에 큰 교리 논쟁이 있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적용을 두고 몇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 보상과 공로: "갚아 주시리라"는 말이 선행을 상을 얻는 공로(자격)로 만든다는 뜻이냐는 물음이다. 개신교 여러 교단은 칭의는 은혜로 받는다고 보며, 이 약속을 구원받은 사람의 선행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으로 설명한다.
  • 물질적 보상으로 읽는 문제: 이 구절을 헌금하면 물질로 몇 배를 돌려받는다는 근거로 쓰는 경우가 있다. 많은 신학자는 이를 문맥을 떠난 인용이라고 비판한다. 구절이 말하는 대상은 '가난한 자'이고, 갚으시는 때와 방식은 하나님께 맡겨져 있다는 이유다. 이런 인용을 하는 쪽은 하나님이 실제로 물질로도 갚으신다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이 쟁점은 번영신학 논쟁과 맞닿아 있다.
  • 교회 헌금과의 관계: 본문은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베푸는 일을 말하므로, 교회에 내는 헌금 일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구제를 권하는 설교나 구제헌금 광고, 연말 이웃 돕기 행사 등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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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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