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니두스 원통
역사
나보니두스 원통은 신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남긴 쐐기문자 점토 원통 기록이다. 우르에서 나온 원통에 맏아들 벨사살의 이름이 적혀 있어 다니엘서 연구에서 자주 다뤄진다.
배경
나보니두스는 신바벨론 제국(갈대아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기원전 556년부터 539년까지 다스렸다. 그는 달의 신 '신(Sin)'을 특별히 섬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도시의 오래된 신전을 고쳐 지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신전을 수리하면 공사의 내력과 기도를 적은 점토 원통을 건물 기초나 모퉁이에 묻었다. '나보니두스 원통'은 이런 건축 기념 기록 가운데 나보니두스가 남긴 것을 가리킨다. 출토지가 다른 원통이 여럿 있으나, 성경과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우르에서 나온 원통이다. 나보니두스가 다스리던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함락되었다.
발견과 내용
1854년 영국 영사 J. E. 테일러가 우르의 지구라트(계단식 신전 탑) 모퉁이에서 원통들을 찾아냈다. 원통에는 당시 바벨론의 공용 문자였던 아카드어 쐐기문자(쐐기 모양의 획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일부는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은 먼저 이 지구라트의 내력을 적는다. 우르의 옛 왕 우르남무가 짓기 시작하고 그 아들 슐기가 완성했으나 오랜 세월 동안 허물어졌고, 이를 나보니두스가 다시 세웠다는 내용이다. 원통의 끝에는 달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가 붙어 있다. 나보니두스는 이 기도에서 자신이 죄짓지 않게 지켜 달라고 구하고, 맏아들 '벨샤르우추르'의 마음에도 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두어 달라고 빈다. 이 이름이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에 해당한다.
이 밖에 바벨론 북쪽 도시 시파르에서 나온 나보니두스 원통도 있다. 여기에는 하란과 시파르의 신전 복구 기록과 함께 고레스가 메디아 왕을 무찌른 일이 언급되어 있다.
영향
우르 원통이 발견되기 전에는 벨사살이라는 이름이 다니엘서(다니엘 5장, 7장, 8장) 밖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나 베로수스 같은 고대 역사가들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으로 나보니두스만을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벨사살을 실존하지 않은 인물로 보기도 했다.
원통은 벨사살이 나보니두스의 맏아들로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후 해독된 '나보니두스 연대기'와 '나보니두스 운문 기록' 같은 다른 문서도 함께 연구되었다. 이 문서들에 따르면 나보니두스는 아라비아의 테이마에 약 10년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왕자가 바벨론에서 통치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의 설교나 성경공부 교재에서도 이 원통은 성경 고고학의 대표적 사례로 흔히 소개된다.
평가
보수적·복음주의적 학자들은 이 원통이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이들은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동안 벨사살이 실제 통치를 맡았기 때문에 다니엘서가 그를 '왕'이라 불렀다고 설명한다.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나라의 '셋째 통치자' 자리를 약속한 대목(다니엘 5:7, 16, 29)도 아버지와 자신 다음 자리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은 성경 무오설을 지지하는 쪽에서 자주 인용된다.
역사비평적 학자들은 벨사살이 공식 왕위에 오른 기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다니엘서가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로 부른다는 점(다니엘 5:2, 11, 18)도 문제로 든다. 이들은 이런 차이를 근거로 다니엘서가 후대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보수 쪽은 고대 셈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선왕이나 조상, 후계자를 가리키기도 한다고 반론한다. '셋째 통치자'라는 표현을 직함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교회위키는 이 가운데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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