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트
역사
지구라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전을 높은 곳에 올리려고 벽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만든 거대한 탑 모양 건축물이다.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의 배경으로 자주 거론된다.
배경
지구라트(ziggurat)라는 이름은 아카드어 '지쿠라투'에서 왔으며, '높이 솟은 것', '꼭대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카드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 일대)에서 쓰이던 셈어 계열 언어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신이 사는 곳을 하늘과 가까운 높은 자리로 여겼다. 그래서 신전을 흙으로 쌓은 높은 단 위에 세웠는데, 이 관습이 발전해 지구라트가 되었다. 이 지역에는 돌이 귀했으므로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로 속을 채우고, 겉은 불에 구운 벽돌로 싼 뒤 역청(아스팔트 성분의 천연 접착제)으로 이어 붙였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달리 내부에 무덤 방이 없고, 맨 위에 신전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전개
- 기원전 4천년기 말: 우루크 등 수메르 도시에서 높은 단 위에 신전을 세우는 초기 형태가 나타났다.
- 기원전 21세기: 우르 제3왕조의 왕 우르남무가 달의 신 난나에게 바친 우르의 지구라트를 세웠다. 오늘날 가장 잘 남아 있는 지구라트로 꼽힌다. 우르는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기록된 갈대아 우르로 흔히 동일시된다.
- 기원전 13세기 무렵: 엘람(지금의 이란 남서부)에서 초가 잔빌 지구라트가 세워졌다.
- 기원전 7~6세기: 신바빌로니아의 나보폴라사르와 느부갓네살 2세가 바벨론의 지구라트 에테메난키를 다시 크게 쌓았다. 에테메난키는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이며,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에게 바쳐졌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에 여러 층으로 된 탑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 기원전 4세기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에테메난키를 다시 세우려 했다고 전하지만 이루지 못했고, 이후 허물어졌다.
결과와 영향
근대 고고학이 지구라트를 발굴하면서 성경 연구에도 영향을 주었다. 영국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가 1920~30년대에 우르를 발굴했고, 에테메난키는 기초 부분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는 무대를 '시날 평지'로 소개하고, 사람들이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탑을 쌓았다고 기록한다(창세기 11:3). 이 묘사가 메소포타미아의 벽돌 건축과 맞아떨어지고,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표현(창세기 11:4)도 지구라트의 종교적 의미와 통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와 성경 해설서가 지구라트, 특히 에테메난키를 바벨탑 이야기의 배경으로 본다. 일부 학자는 야곱의 사다리(창세기 28:12)에 나오는 '사닥다리'를 지구라트의 계단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평가
지구라트와 바벨탑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성경 기록을 역사적 사건으로 읽는 보수적 복음주의 쪽에서는 지구라트를 바벨탑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 주는 고고학 자료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창세기 11장을 바빌론의 제국 종교와 인간의 교만을 비판하는 신학적 이야기로 읽는 쪽에서는, 지구라트가 그 비판의 구체적 대상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다만 특정 지구라트를 바벨탑 그 자체로 단정할 고고학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로 주일학교 교재, 성경공부, 성지 관련 자료에서 바벨탑 이야기를 설명할 때 지구라트의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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