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니두스
인물
나보니두스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마지막 왕이다(재위 기원전 556~539년). 성경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생애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 2세가 죽은 뒤 짧은 재위가 잇따르던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556년 어린 왕 라바시-마르둑이 궁정 반란으로 제거되자 즉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족 혈통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어머니 아다드-구피는 하란의 달신 '신(Sin)'을 열심히 섬긴 인물로 비문에 남아 있다.
재위 중반에는 약 10년 동안 아라비아 북서부의 오아시스 도시 테이마에 머물렀다. 그동안 수도 바벨론의 통치는 아들 벨사살이 맡았다. 기원전 539년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하면서 제국은 무너졌다. 그 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바빌로니아 사제 베로수스는 고레스가 그를 살려 두고 카르마니아 지방으로 보냈다고 전한다.
사역과 업적
나보니두스는 달신 '신'을 특별히 높였다. 하란의 신전을 다시 세우는 등 여러 옛 신전을 복구하면서 오래된 기초석과 비문을 찾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최초의 고고학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면 그가 오래 자리를 비운 동안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의 신년 축제가 열리지 못했다. 이 일로 바벨론 사제층의 반감을 샀다. 고레스 쪽 기록인 고레스 원통은 그를 신을 소홀히 한 왕으로 그린다. 다만 이 기록은 정복자의 선전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나보니두스는 성경 본문보다 다니엘서의 역사성 논의에서 주로 언급된다. 19세기 이전에는 벨사살이라는 이름이 성경 밖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니엘 5장의 벨사살은 실존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후 우르에서 발견된 나보니두스 원통 비문에 그의 맏아들 벨사살의 이름이 나오고, 다른 문서에서 벨사살이 바벨론을 대신 다스린 사실이 드러났다.
보수적 해석자들은 이를 근거로 다니엘 5:7, 5:29에서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셋째 통치자' 자리를 약속한 대목을 설명한다. 나보니두스가 첫째, 벨사살이 둘째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다니엘서 강해와 성경 변증 자료에서도 이 설명이 흔히 소개된다.
평가
학자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보수적 학자들은 나보니두스 관련 비문의 발견을 다니엘서 기록의 정확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본다.
비평적 학자들은 다른 점에 주목한다. 다니엘서가 나보니두스를 언급하지 않고, 벨사살을 '왕'이자 느부갓네살의 아들(다니엘 5:2)로 부른다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다니엘서가 후대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보수 쪽은 '아버지'가 선왕이나 조상을 뜻하는 표현일 수 있다고 반론한다.
사해 사본 가운데 「나보니두스의 기도」로 불리는 단편도 논의 대상이다. 이 단편에는 왕이 테이마에서 7년간 병을 앓다가 한 유대인의 도움으로 나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부 학자는 이 전승이 다니엘 4장의 느부갓네살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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