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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역사

길가메시 서사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이다. 그 안에 실린 홍수 이야기가 창세기의 노아 홍수와 비슷하여 성경 연구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배경

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 일대)의 도시 우루크를 다스린 왕이다. 수메르 왕명록(수메르 왕들의 이름과 재위를 적은 고대 목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실존 인물이라면 기원전 2700년 무렵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루크는 창세기의 '에렉'(창세기 10:10)과 같은 도시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서사시는 영웅의 이야기를 긴 시로 엮은 문학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길가메시는 친구 엔키두와 함께 삼나무 숲의 괴물 훔바바를 물리친다. 엔키두가 죽자 길가메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영생을 찾아 나선다. 그는 큰 홍수에서 살아남아 신들에게서 영생을 받은 우트나피시팀을 만나지만, 끝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우루크로 돌아온다.

전개

  • 기원전 2000년 무렵 전후: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한 수메르어 시 여러 편이 따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 기원전 18세기 무렵: 이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은 고대 바빌로니아어 판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기원전 13~11세기 무렵: 서기관 신레키운니니가 열두 개의 토판(글을 새긴 점토판)으로 된 표준판을 편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 기원전 7세기: 앗수르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 설형문자(쐐기 모양 문자) 사본이 보관되었다.
  • 19세기 중엽: 영국 발굴단이 니느웨 유적에서 이 토판들을 찾아내 대영박물관으로 옮겼다.
  • 1872년: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가 제11토판에 실린 홍수 이야기를 해독하여 발표했다.

결과와 영향

스미스의 발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제11토판의 홍수 이야기는 노아의 홍수와 닮은 점이 많다.

  • 신이 미리 경고하여 배를 짓게 한다.
  • 배에 역청을 칠한다.
  • 배가 산에 머문 뒤 새를 날려 보낸다.
  • 물이 빠진 뒤 제사를 드리고, 신이 그 향기를 맡는다.

다른 점도 분명하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여러 신이 등장하는 다신교 이야기이고, 신들이 홍수를 일으킨 까닭이 뚜렷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창세기는 한 분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 때문에 심판하신다고 적는다(창세기 6:5). 배가 머문 곳도 다르다. 서사시에서는 니무시(니시르) 산이고, 창세기에서는 아라랏산이다. 또 우트나피시팀은 영생을 받지만 노아는 그렇지 않다.

1902년에는 독일의 아시리아학자 프리드리히 델리치가 '바벨과 성경' 강연에서 구약이 바빌로니아 문화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주장하여 논쟁이 일었다. 한국 교회에서도 이 서사시는 노아 홍수 설교, 기독교 변증 서적, 창조와 진화 관련 강의 등에서 흔히 거론된다.

평가

두 이야기의 관계는 해석이 갈린다.

  • 역사비평 학계와 자유주의 신학 쪽 학자들: 창세기 저자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전승을 받아들여 고쳐 쓴 것으로 본다.
  • 보수적 복음주의 쪽: 실제로 있었던 홍수에 대한 공통 기억이 여러 민족에게 남았다고 본다. 이 가운데 창세기가 가장 정확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는 흔히 성경 무오설과 함께 주장된다.
  • 또 다른 견해: 창세기가 당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다신교적 세계관을 바로잡는 신학적 응답을 담았다고 본다.

현존하는 토판의 연대가 창세기의 기록 시기로 여겨지는 때보다 이르다는 점은 대체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 사실이 직접적인 의존 관계를 증명하는지는 입장마다 다르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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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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