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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민족복음화성회

역사 · 같은 말: '77 민족복음화 대성회

'77 민족복음화성회는 1977년 여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개신교 초교파 대중 전도집회입니다. 외국인 강사 없이 한국 교회가 스스로 준비하고 이끈 대형 연합집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경

1970년대 한국 개신교는 교인 수가 빠르게 늘었고, 대규모 연합 전도집회가 잇따라 열렸습니다. 1973년에는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가, 1974년에는 엑스플로 74가 여의도광장에서 열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다만 두 집회 모두 외국인 전도자나 국제 선교단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거치며 한국 교회도 외국의 도움 없이 큰 연합집회를 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족복음화'는 온 겨레에게 복음을 전해 나라 전체를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자는 구호입니다. 이 시기 보수 쪽 교회들이 전도를 북돋우며 널리 썼습니다.

전개

  • 준비: 각 교단에서 활동하던 부흥사(교회를 돌며 부흥회를 이끄는 설교자)들이 중심이 되어 교단을 넘어선 준비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대회장은 성결교 출신 부흥사 신현균 목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977년 8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며칠 동안 집회가 열렸습니다. 날마다 설교와 통성기도,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강사는 모두 한국인 목회자와 부흥사였고, 이 점이 앞선 집회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으로 꼽힙니다.
  • 규모: 매일 많은 교인이 광장에 모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참석 인원은 주최 측 발표와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어, 정확한 수치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결과와 영향

이 집회는 1973년, 1974년, 1980년으로 이어진 여의도 대형 집회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1980년 80 세계복음화대성회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였다고 평가받습니다. 한국 교회가 스스로 기획한 초교파 연합집회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마다 전도 운동과 부흥회가 활발해지는 데에도 힘을 보탰고, 1970~80년대 한국 교회 성장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1984년 한국 교회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 등 이후의 대형 연합행사도 이런 경험 위에서 준비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평가

복음주의 쪽에서는 이 집회를 외국 선교의 도움을 받던 한국 교회가 스스로 전도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기도와 회개를 강조한 부흥 전통을 크게 드러냈다는 의미도 둡니다.

반면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집회가 열린 때는 유신 체제(1972년부터 이어진 박정희 정부의 장기 집권 체제) 아래였습니다. 그 시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교회와 신자들은 인권·민주화 운동에 나섰습니다(교회와 민주화운동). 비판하는 쪽은 대형 전도집회가 개인 구원과 교세 확장에 무게를 두면서 사회 현실에는 침묵했다고 봅니다. 대규모 정부 소유 광장에서 집회가 열린 점을 두고 정권과 교회의 관계를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교회와 정치). 숫자와 규모를 앞세운 성장주의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집회를 이끈 쪽은 복음 전도가 교회의 본래 사명이었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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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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