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역사 · 같은 말: 빌리 그레이엄 서울 대집회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미국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이 설교한 대규모 연합 전도 집회이다. 마지막 날 110만 명이 넘게 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경
빌리 그레이엄(1918~2018)은 미국 남침례회 목사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연 복음 전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에 처음 한국을 찾았고, 1973년과 1984년에도 한국을 방문했다.
1973년 대회는 한국 교회 쪽이 여러 차례 초청한 끝에 열렸다. 한경직 목사가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표어는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였다. 준비위원회는 많아야 20만~50만 명이 모일 것으로 내다본 것으로 전해진다. 효창공원 등도 장소 후보에 올랐지만, 당시 넓은 빈터였던 여의도광장이 집회 장소로 정해졌다.
전개
- 지방 대회(1973년 5월 16일~): 서울 대회에 앞서 5월 16일 대전 대회를 시작으로 부산·대구·광주·전주·춘천·인천·수원·제주에서 지방 대회가 열렸다. 대회 직후 한국 교회 쪽이 펴낸 기록집에 따르면, 9개 도시에 모인 사람은 모두 118만 명이 넘는다. 결신자는 1만 6천 명이 넘었다. 결신자는 집회 현장에서 예수를 믿기로 결단한 사람을 말한다.
- 서울 대회(5월 30일~6월 3일): 여의도광장에서 닷새 동안 열렸다. 그레이엄의 설교는 김장환 목사가 우리말로 통역했다. 찬송 가수 조지 비벌리 시어는 6천여 명의 찬양대와 함께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한국어로 불렀다.
- 마지막 날(6월 3일 주일): 110만~115만 명이 모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4만여 명이 결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와 영향
연인원은 날마다 온 참석자 수를 모두 더한 수이다. 서울 대회 닷새 동안의 연인원은 자료에 따라 320만~334만 명으로 기록된다. 결신자는 7만 2천~8만여 명으로 기록된다. 지방 대회까지 합한 전체 참여 인원을 440만 명으로 보는 집계도 있다. 마지막 날 모인 인원은 그레이엄이 평생 연 전도 집회 가운데 가장 많은 청중이 모인 기록으로 꼽힌다.
이 대회 뒤에도 여러 교단이 함께 여는 대형 집회가 이어졌다. 엑스플로 74, 77 민족복음화성회, 80 세계복음화대성회가 그 예이다. 2023년 6월 3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5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설교했다.
평가
교계 언론과 대회 관계자들은 이 대회를 한국 교회 부흥의 촉매로 본다. 또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대한 관심을 높인 계기로 평가하며,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자주 다룬다.
다만 참석자 수와 결신자 수는 대부분 주최 측 집계에 바탕을 두고 있고, 자료마다 수치가 다르다. 그래서 숫자를 인용할 때는 어느 자료의 집계인지 함께 밝혀야 한다. 이 대회가 뒷날 한국 교회 성장에 얼마나 직접 영향을 주었는지, 대형 집회 중심의 전도 방식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는 따로 검토가 필요하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 1973 여의도 전도대회 열기, 지역에서 먼저 불붙었다 (국민일보)
- [빌리 그레이엄의 삶과 신앙] 대규모 여의도 집회 등 한국교회 부흥 촉매 역할 (국민일보)
- [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⑬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 (국민일보)
-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열린다 (뉴스제이)
- (1973.06.03)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설교 Full (더미션)
-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50주년 (한국경제)
- [인터뷰: 김장환 목사] "그레이엄 목사는 겸손하고 복음에 열정인 성직자" (VOA)
- 빌리 그레이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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