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워드 비처
인물 · 같은 말: Henry Ward Beecher, 남동생 헨리 워드 비처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 1813~1887)는 19세기 미국 회중교회 설교자이자 노예제 폐지 운동가이다. 약 40년 동안 뉴욕 브루클린의 플리머스 교회를 목회했다.
생애
1813년 6월 24일 미국 코네티컷주 리치필드에서 태어났다. 목사 라이먼 비처의 열세 자녀 가운데 하나이고,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의 남동생이다. 1837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레인 신학교를 졸업하고 인디애나주 로렌스버그의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이 무렵 유니스 화이트 불러드와 결혼해 열 자녀를 두었다. 인디애나에서 목회한 뒤 뉴욕 브루클린의 플리머스 교회로 옮겼다. 이 교회는 회중교회 전통에 속한다. 회중교회는 개교회 교인 총회가 교회 운영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교회 형태이다. 그는 이 교회에서 약 40년 동안 목회했고 1887년 브루클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설교: 감정에 호소하면서 도덕적 갱신을 강조하는 설교로 많은 청중을 모았다. 당대 미국 개신교에서 가장 이름난 목회자로 꼽힌다.
- 노예제 반대: 노예제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대표적 성직자이다. 1856년 노예제를 둘러싸고 캔자스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자, 노예제 반대 이주민에게 샤프스 소총을 보내는 모금을 지지했다. 그는 노예제 지지 세력에게는 성경보다 소총이 더 강한 도덕적 논거라는 취지로 말했고, 그 뒤 이 소총들은 "비처의 성경(Beecher's Bibles)"이라고 불렸다. 그의 교회는 캔자스로 가는 이주민 단체에 소총과 함께 성경 25권을 마련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이주민들이 세운 교회는 지금도 '비처 성경과 소총 교회'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 일은 노예제 폐지 운동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 신앙과 과학: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신앙과 조화시키려 했다. 이 때문에 19세기 후반 미국 개신교에서 창조와 진화 논의를 이끈 인물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와 직접 관계를 맺었거나 한국 선교에 관여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주로 누나 해리엇 비처 스토와 미국 노예제 폐지 운동의 역사를 다룰 때 함께 소개된다.
평가
지지하는 쪽은 그가 노예제 반대와 같은 사회 문제에 교회가 목소리를 내도록 이끌었고, 과학과 신앙을 대화시키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비판도 있다.
- 교리보다 감정과 도덕을 앞세우고 진화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보수적 신학 쪽은 그를 자유주의 신학으로 기우는 흐름의 선구자로 비판적으로 본다. 이 흐름은 뒷날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 노예제에 맞서려고 무장을 지지한 일은 목회자의 처신으로서 지금도 논란이 된다.
- 1873년 경제 공황 때 그가 플리머스 교회 교인층인 중산층의 윤리와 이해를 옹호했다고 보는 연구도 있다.
- 1870년대에는 교인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고발을 당해 민사 재판까지 갔으나, 배심원단이 평결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4곳
- Henry Ward Beecher (EBSCO Research Starters)
- Beecher's Bibles (Encyclopedia.com)
- Beecher's Bibles (Wikipedia)
- Beecher Bible and Rifle Church (Travel Kansas)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