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위클리프
인물 · 같은 말: 위클리프, 존 와이클리프
존 위클리프(1330년경~1384)는 잉글랜드의 신학자·철학자·교회 개혁가이다. 성경 전체를 처음으로 영어로 옮기는 일을 이끌었고, 종교개혁보다 앞서 교회 개혁을 주장한 선구자로 꼽힌다.
생애
존 위클리프는 1330년경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의 노스라이딩 지역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퀸스·머턴·베일리얼 칼리지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히 어느 칼리지에 속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360년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교양학부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고 학장으로도 임명되었다. 그러나 1361년 학장직에서 물러나, 칼리지가 성직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진 교구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히던 필링엄 교구의 사제가 되었다.
1374년 4월 7일 국왕 에드워드 3세가 그를 러터워스 교구 사제로 임명했다. 이 무렵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 잉글랜드와 로마 교황청 사이에는 교황청이 걷는 세금과 성직 임명권 같은 문제가 걸려 있었는데, 이를 논의하려고 브뤼허(지금의 벨기에)에 보낸 사절단에 국왕의 위임을 받아 참여했다. 이때 그는 애국자이자 국왕 편에 선 사람의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된다. 1384년 12월 31일 러터워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위클리프는 신학자이자 철학자, 교회 개혁가로 활동했다. 당시 교회의 권위와 관행을 비판했으며, 예정 문제와 화체설을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체설은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그 본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업적은 성경 전체를 처음으로 영어로 옮기는 일이다. 이 번역은 흔히 '위클리프 성경'이라고 불린다. 다만 그는 번역을 혼자 다 한 사람이라기보다 번역을 추진하고 장려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의 가르침은 뒤에 잉글랜드에서 활동한 롤라드파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위클리프는 14세기 인물로, 한국 교회와 직접 이어지는 활동은 없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개혁 시도와 모국어 성경 번역의 역사를 설명할 때 그의 이름이 다뤄진다. 그의 이름을 딴 성경 번역 선교 단체처럼 한국 교회와 이어지는 구체적인 사례는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보완이 필요하다.
평가
개신교에서는 위클리프를 종교개혁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본다. 특히 성경을 일반 신자가 쓰는 말로 옮기려 한 점과, 교회 권위를 성경에 비추어 따져 본 점이 높이 평가된다. 반면 그의 성찬론과 교회 비판은 당대 교회의 권위와 정면으로 부딪쳤고, 당시 교회 당국에게서 정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의 가르침을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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