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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레이놀즈

인물 · 같은 말: 이눌서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1867~1951, 한국 이름 이눌서)는 미국 남장로교가 보낸 선교사이다. 한국어 성경 번역에 43년 동안 참여했고,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생애

1867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1887년 햄든-시드니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로 일했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도 공부했다. 1890년에는 리치먼드에 있는 남장로교 신학교인 유니온 신학교에 들어갔다. 신학교에 다니던 1891년, 해외 선교를 주제로 열린 전국 신학생 집회에서 호러스 언더우드와 윤치호가 한국 선교에 관해 강연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이 강연을 듣고 한국 선교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자원운동의 영향도 받았다.

1892년 11월 3일 다른 남장로교 선교사 6명과 함께 제물포에 도착했다. 1937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1951년 세상을 떠났다. 아내 팻시 볼링도 서울·전주·목포·평양에서 남편과 함께 활동했다.

사역과 업적

  • 호남 선교 준비와 목회: 서울에 머무는 동안 남장로교의 호남 선교 계획을 세웠다. 1894년에는 전라도 전역을 돌며 선교 거점을 세울 곳을 살피고, 전주와 목포의 땅을 사들였다. 서울 서대문 근처의 자기 집을 예배 장소로 열어 주일마다 집회를 열기도 했다. 1897년 가족과 함께 전주로 옮겨 전주교회(뒤의 서문밖교회)에서 목회했다. 1902년부터는 성경 번역 때문에 서울에서 지냈고, 1908년 전주교회로 돌아와 제직회(교회 직분자들의 회의)를 조직했다.
  • 성경 번역: 1893년부터 1936년까지 43년 동안 번역에 참여했다. 한국어 성경 번역자 가운데 가장 오래 참여한 사람이다. 특정한 책을 맡아 옮기기보다 성경 66권 전체를 최종적으로 다듬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1911년의 『성경전서』부터 1938년의 『성경개역』까지 관여했다.
  • 신학 교육: 1906년부터 평양장로회신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1917년부터 1937년까지는 이 학교에서 어학과 조직신학(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문)을 가르쳤고, 신학 학술지 『신학지남(神學指南)』의 편집인도 맡았다.
  • 교회 조직: 장로교 선교사들이 함께 만든 장로교 선교공의회의 회장을 지냈다. 독노회와 총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레이놀즈가 오랫동안 다듬은 번역 성경은 그 뒤 한국 개신교가 쓰는 성경 번역본의 바탕이 되었다. 그가 처음 목회한 전주교회는 호남 지역 교회의 뿌리가 되는 '모(母)교회'로 여겨진다. 또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20년 넘게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신학지남』을 편집했기 때문에, 초기 한국 장로교 목회자들의 신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평가

그는 주로 성경 번역가이자 조직신학 교수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의 연구 가운데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신학적 정체성을 살피는 데 그의 신학을 활용하는 것이 많다. 반면 전주 등 현장에서 목회한 활동은 다른 사역에 비해 덜 알려졌다는 지적이 있다. 그의 활동에 대한 뚜렷한 비판은 아직 정리된 것이 적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5곳
  1. 우리말 성경 번역에 가장 오래 헌신한 이눌서 선교사 (기독일보)
  2. 레이놀즈 선교사의 삶과 신학 조명 (주간기독신문)
  3. 주간기독신문 기사 (전주 선교와 레이놀즈 부부)
  4.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 (위키백과)
  5. 레이놀즈의 현장 목회 연구 논문 초록 (DBpia)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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