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시 볼링 레이놀즈
인물 · 같은 말: 팻시 볼링, Patsy Bolling, 팻시 레이놀즈
팻시 볼링 레이놀즈(Patsy Bolling Reynolds, 1868~1962)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다. 1892년 남편 윌리엄 레이놀즈(이눌서)와 함께 남장로교 선발대 일곱 명의 한 사람으로 한국에 와서 1937년까지 일했다.
생애
1868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장로교 역사협회 자료는 출생지를 애멀리아 카운티로 적는다. 한국 쪽 인물 자료에는 출신지가 리치먼드로, 아버지는 존 볼링, 어머니는 줄리아 틴슬리 볼링으로 올라 있다. 교단 신문 기사에 따르면 결혼 전에는 교사로 일했다.
1892년 2월 미국 남장로교(PCUS)는 그녀와 장차 남편이 될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를 한국 선교사로 임명했다. 두 사람은 결혼한 뒤 같은 해 9월 미국을 떠났다. 남장로교 선발대 일곱 명은 레이놀즈 부부, 윌리엄 전킨과 메리 레이번 전킨 부부, 루이스 테이트와 그의 누이 매티 테이트, 린니 데이비스였다. 이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1892년 10월 18일과 11월 3일에 한국에 들어왔고, 레이놀즈 부부는 11월 3일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부는 처음에 서울에 살다가 1897년 전주로 옮겼다. 그 뒤 남편과 함께 서울·전주·목포·평양 등지에서 일했고, 1937년 함께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1951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이후 막내딸 엘라의 집에서 지내다가 1962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전주 선교 초기에 여성 사역을 맡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매티 테이트가 여성들을 위한 주간 모임을 열었고, 팻시 레이놀즈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위한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여기에 의사 마티 잉골드가 합류하면서 전주의 여성 선교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된다. 1897년 전주에서 처음으로 다섯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남편 윌리엄 레이놀즈는 남장로교 선교부의 첫 의장을 지냈다. 그는 성경 번역자로 위원회에 참여해 한글 성경 번역에 오래 힘썼고, 평양의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팻시 레이놀즈는 이 45년 사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한국에서 네 자녀를 낳았으며, 둘째 아들 존 볼링 레이놀즈는 1920년부터 1930년까지 선교사로 일하면서 전주 신흥학교와 광주 숭일학교 등에서 가르쳤다.
평가
남장로교가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펼친 선교를 연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다만 개인의 활동을 따로 다룬 자료는 많지 않고, 대부분 남편이나 선발대 전체를 다루는 글 속에서 언급된다. 최근에는 초기 여성 선교사 연구에서 전주 여성 사역과 주일학교를 시작한 인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확인된 범위 안에서 그녀를 따로 비판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 Guide to the Reynolds and Groves Family Papers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 Guide to the Reynolds and Groves Family Papers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 Reynolds, Patsy Bolling(이눌서 부인) - onthedh
- 우리말 성경 번역에 가장 오래 헌신한 이눌서 선교사 - 기독일보
- [역사기획] 7인의 선발대를 아시나요 - 기독신문
- [배경] 미국 남장로회 - 평양대부흥
- Awakening the Hermit Kingdom: Pioneer American Women Missionaries in Korea
- Pioneers - km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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