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바이처
인물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알자스 출신의 신학자·철학자·오르간 연주자·의사이다. 『예수 생애 연구사』로 역사적 예수 연구에 큰 영향을 남겼고, 아프리카 가봉 랑바레네에서 의료 활동을 펼쳐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생애
1875년 당시 독일 영토이던 알자스의 카이저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루터교 목사로 시무하던 귄스바흐에서 자랐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해 칸트의 종교철학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트라스부르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설교자로 일하며 신학부에서 가르쳤다.
서른 살 무렵 아프리카 의료 봉사에 뜻을 두고 의학 공부를 시작해 1913년 의사가 되었다. 같은 해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당시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였던 가봉의 랑바레네로 건너가 병원을 열었다. 이 일은 파리 선교회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선교회 일부가 그의 신학을 문제 삼았기 때문에, 설교는 하지 않고 의료 활동만 한다는 조건이 붙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국적자라는 이유로 프랑스에 억류되었다. 1924년 랑바레네로 돌아와 병원을 다시 세웠고, 이후 유럽에서 연주회와 강연을 열어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1965년 랑바레네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신학: 1906년에 펴낸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재판 제목 『예수 생애 연구사』)에서 19세기 학자들이 그린 예수상을 정리했다. 그는 이 예수상들이 저마다 연구자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 대신 예수를 임박한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린 묵시적 예언자로 보았는데, 이 견해를 '철저 종말론'이라 부른다. 종말론 연구와 복음서 해석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30년에는 바울의 사상을 '그리스도 신비주의'로 해석한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를 냈다.
- 음악: 바흐 연구서를 쓰고, 오르간 연주자이자 오르간 복원 운동가로 활동했다.
- 윤리와 의료: '생명 경외'를 윤리의 근본 원리로 내세웠다. 생명 경외란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랑바레네 병원은 반세기 가까이 지역 주민을 진료했다.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말년에는 핵무기 실험에 반대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에서는 '밀림의 성자'라는 이름으로 위인전과 교과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의 삶은 의료 선교와 기독교적 봉사의 상징처럼 소개되었다. 헌신적인 의사를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르는 표현이 생겨났으며, 장기려가 대표적으로 이렇게 불렸다. 신학교에서는 신약학과 역사적 예수 연구의 흐름을 다룰 때 빠지지 않고 소개된다.
평가
그의 봉사와 생명 경외 사상은 교단을 넘어 높이 평가받는다. 반면 신학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보수적인 교단과 신학자들은 그가 예수를 종말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자로 본 점, 정통 기독론과 거리가 있는 점을 들어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에 속한다고 본다. 역사비평 연구 쪽에서는 19세기 예수 연구의 한계를 드러낸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의료 활동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아프리카인을 대하는 태도가 온정적 가부장주의, 곧 상대를 보호 대상으로만 보고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 태도였다는 지적이 있고, 병원 운영 방식이 식민지 시대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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