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인물
장기려(張起呂, 1911~1995)는 한국의 외과 의사이자 기독교인 사회봉사자다. 부산 복음병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고, 1968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세웠다.
생애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생일은 자료에 따라 8월 14일 또는 10월 5일로 다르게 적혀 있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마치고 1932년 모교의 외과 조수와 강사가 되었다. 1940년에는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평양연합기독교병원 등에서 외과 의사로 일했다.
한국전쟁 중에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에 자리 잡았다. 북에 남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정부가 특별 상봉을 제안했으나, 다른 이산가족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95년 12월 25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복음병원: 1951년 부산 영도의 제3영도교회 안에 피란민을 무료로 치료하는 복음진료소가 문을 열었고, 장기려가 초대 원장을 맡았다. 이 진료소는 장기려, 전영창, 한상동 목사 등이 함께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모체이다. 그는 1976년 6월까지 25년 동안 원장으로 일했다.
- 간 외과: 194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간에 생긴 암 덩어리를 떼어 내는 수술에 성공했다. 1959년에는 간암 환자의 간 대량 절제술(간의 큰 부분을 잘라 내는 수술)에 성공했다. 1974년 한국간연구회 창립을 이끌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서울대·부산대·가톨릭의대 등에서 의사들을 길러 냈다.
- 청십자의료보험조합: 1968년 5월 부산 지역 23개 교회의 교인 723명과 함께 이 조합을 시작했다. "건강할 때 이웃을 돕고 병이 났을 때 도움을 받자"를 내걸고, 조합원이 매달 적은 보험료를 내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첫 가입자는 함석헌이었다. 1974년 정부로부터 정식 의료보험조합으로 인정받았고,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자 조합원을 지역의료보험으로 넘기고 해산했다.
- 그 밖의 봉사: 1976년 부산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세워 무료로 진료했다.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 부산 생명의 전화, 장애자재활협회 부산지부 등 여러 복지 단체를 세우는 데도 참여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평생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며 의술로 신앙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된다. 1956년 부산에서 성경공부 모임인 '부산모임'을 만들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도 이 모임 회원들과의 논의, 그리고 100여 개 교회에 보낸 취지문에서 출발했다. 이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이웃의 병원비 부담을 함께 나누는 구제를 제도로 만든 사례로 꼽힌다. 그는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 의사", "행려병자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돈 없는 환자를 병원 뒷문으로 몰래 내보내 주었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가
청빈하게 살며 가난한 이들을 돌본 의사로 높이 평가받는다.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세상을 떠난 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흔히 한국 의료보험의 '효시'(처음 시작)로 불린다. 한편 정부의 의료보험은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의 직장의료보험으로 따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을지를 두고는 논의가 있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8곳
- 장기려 - 위키백과
- 장기려 - 우리역사넷(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장기려 - 국가기록원
- 고신대학교복음병원 - 위키백과
- 1951년 무료진료 '복음병원' 개원… 초대원장 장기려 박사 - 문화일보
- 국민건강보험 뿌리 논쟁 - 기독신문
- 장기려 - 사이언스타임즈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님을 기리는 공간 - 부산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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