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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돔은 출애굽기 1:11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의 바로를 위해 강제 노동으로 지은 국고성 가운데 하나로, 라암셋과 함께 언급되는 애굽의 도시이다.

성경 본문

비돔은 출애굽기 1:11에 나온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 자손이 많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자, 애굽 사람들은 감독을 세워 이스라엘 자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괴롭게 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國庫城, 곡식이나 물자를 쌓아 두는 창고 도시)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했다. 성경에서 비돔이라는 이름은 이 한 구절에만 나온다.

배경

이름은 애굽어 '페르 아툼'(아툼 신의 집)을 히브리어로 옮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툼은 고대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다.

위치는 나일강 삼각주 동쪽, 오늘날 와디 투밀라트라고 불리는 골짜기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다만 어느 유적이 비돔인지는 학자마다 다르다. 19세기 후반 스위스의 이집트학자 에두아르 나빌이 텔 엘마스후타를 발굴하고 이곳을 비돔으로 보았으나, 이후 근처의 텔 에르레타바를 비돔으로 보는 학자도 많다. 이 일대가 출애굽기 12:37의 숙곳과 관련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헬라어 구약인 칠십인역은 출애굽기 1:11에서 비돔과 라암셋 외에 '온, 곧 헬리오폴리스'를 덧붙여 세 성읍을 적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비돔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종살이를 보여 주는 구체적인 장소로, 뒤이어 나오는 출애굽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하나님이 이 고된 노동에서 백성을 건져 내셨다는 고백은 구약 전체에서 반복된다. 신약은 비돔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스데반은 사도행전 7:17-19에서 애굽 왕이 조상들을 학대한 일을 되짚으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건을 죄의 종노릇에서 구원받는 일의 그림자로 읽어 왔다.

해석과 논점

비돔은 함께 언급된 라암셋과 더불어 출애굽 연대 논쟁에서 자주 거론된다. 라암셋이라는 이름이 기원전 13세기의 람세스 2세와 연결된다고 보는 쪽은 출애굽을 그 무렵으로 본다. 반면 열왕기상 6:1의 '480년'을 근거로 출애굽을 기원전 15세기로 보는 쪽은, 지명이 후대에 익숙한 이름으로 바뀌어 기록되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비돔의 위치 문제 역시 이 논쟁과 맞물려 있어 어느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본문은 비돔이 어떤 모습의 도시였는지, 이스라엘 자손이 어떤 재료로 지었는지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출애굽기 1:14과 5장에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가 나오기 때문에 비돔도 벽돌로 지었다고 흔히 설명하지만, 이는 본문들을 이어 읽은 해석이다. 나빌이 발굴한 유적의 벽돌을 이스라엘 자손의 노동과 직접 연결하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학계에서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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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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