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3-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13:3-4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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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가 선을 장려하고 악을 벌하도록 세워진 "하나님의 사자"라고 말하는 구절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한계, 그리스도인의 복종, 사형제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의 권면 부분 가운데, 13장 1-7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단락에 속한다. 바로 앞 로마서 12장 17-21절은 신자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권한다. 이어 이 구절은 관원, 곧 통치자가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는 자"라고 말한다. 단락은 로마서 13장 8-10절의 사랑의 계명으로 이어진다.
"사자"로 옮긴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는 '섬기는 자, 일꾼'을 뜻한다. 개역개정은 이 말을 "사역자"로, 새번역은 "일꾼"으로 옮겼다. "칼"은 통치자가 가진 강제력과 형벌권을 가리키는 말로 읽힌다.
해석
- 루터교·개혁교회의 읽기: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국가 통치를 하나님이 세운 질서로 보고 이 단락을 근거로 들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국가 위정자(통치자)를 다루는 장에서 이 단락을 근거 구절로 든다.
- 재세례파의 읽기: 칼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임은 인정한다. 다만 칼은 교회 밖 세상의 질서를 위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칼을 잡지 않는다고 본다. 1527년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이 대표적인 예다.
- 조건적 읽기: 이 구절은 권세가 선을 이루는 본래 역할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역할을 저버리고 선을 벌하는 권력에는 무조건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보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짐승 같은 권력을 그린 요한계시록 13장과 이 구절을 대조하여 읽는다.
논쟁과 쟁점
- 칼과 사형제: 일부는 이 구절을 국가 사형권의 성경적 근거로 든다. 반대쪽은 "칼"이 강제력 일반을 가리킬 뿐 사형을 명령하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사형제와 교회).
- 문맥을 떠난 인용: 이 구절이 역사적으로 식민 권력이나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인용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이 지적은 3-4절이 선을 칭찬하고 악을 벌하는 권세를 전제한다는 점, 그리고 앞뒤의 사랑과 비보복 권면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교회와 정치를 둘러싼 논의에서 대표적으로 인용된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정부에 대한 순응을 강조하는 쪽이 이 구절을 들었다. 반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쪽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사도행전 5장 29절을 들어 맞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시기 대면 예배 제한을 두고도 방역 협조를 주장하는 쪽과 예배의 자유를 주장하는 쪽이 모두 이 구절과 그 반대 구절을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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