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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장 1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나 4:11, 이 큰 성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니느웨를 용서한 일에 화를 내는 요나에게 하나님이 던진 물음으로, 요나서는 이 물음으로 끝난다. 이방 민족까지 아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주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요나 선지자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심판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도망쳤다가, 결국 니느웨에 가서 멸망을 외친다.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하며 돌이키자 하나님은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신다(요나 3:10). 요나는 이 일에 몹시 화를 내며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 하나님은 요나가 앉은 자리에 박넝쿨이 자라 그늘이 되게 하셨다가 하룻밤 사이에 시들게 하신다. 요나가 그 넝쿨을 아까워하자,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사람 십이만여 명과 많은 가축이 있는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물으신다. 요나의 대답은 기록되지 않았다.

해석

  • 보편적 긍휼의 선언으로 읽기: 하나님의 자비가 이스라엘에만 머물지 않고 원수 나라의 백성과 짐승에게까지 미친다는 점이 구절의 중심이라고 본다. 요나가 앞서 고백한 하나님의 성품, 곧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요나 4:2)가 이방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 독자를 향한 열린 물음으로 읽기: 책이 대답 없이 끝나는 것은 요나의 자리에 선 독자, 곧 자기 민족과 자기 편만 아끼는 신앙인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장치라고 본다.
  •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의 뜻: 어린아이를 가리킨다는 해석과,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니느웨 사람 전체의 도덕적 무지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논쟁과 쟁점

요나서가 실제 역사를 기록한 것인지, 교훈을 주려는 이야기인지는 오래된 논쟁이다. 보수적인 교단들은 예수가 요나의 표적을 실제 사건처럼 언급한 점(마태복음 12:40-41)을 들어 역사로 읽고, 일부 학자들은 문학적 성격을 강조한다. 또 이 구절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뜻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니느웨가 용서받은 것은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이며 무조건적 용서가 아니라는 반론이 일반적이다. 니느웨가 뒤에 결국 멸망한다는 나훔의 예언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선교 주일과 선교 집회에서 자주 설교되며, 미전도 지역과 적대적인 나라를 향한 선교의 근거로 인용된다. 북한을 위한 기도회에서 니느웨에 빗대어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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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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