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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37-4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누가복음 6:37-42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평지설교에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베풀라고 가르친 대목이다. '티와 들보' 비유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38절은 헌금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는 열두 제자를 세운 뒤 평지에 내려와 제자들과 무리에게 가르친다(누가복음 6:17-49). 이 가르침을 흔히 '평지설교'라 부르며,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내용이 많이 겹친다. 바로 앞 구절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고,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누가복음 6:36)로 끝난다(누가복음 6장 27-36절). 37-42절은 이 자비를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적용한 대목이다. 짧은 비유 몇 개(소경 인도자, 제자와 선생, 티와 들보)를 이어 붙인 형태이며, 비슷한 말씀이 마태복음 7:1-5, 15:14, 10:24-25에 흩어져 있다.

해석

  • 자비의 윤리로 읽기: 많은 주석가는 37-38절을 36절의 '자비'를 풀어 쓴 말로 본다. "비판"(그리스어 크리노, '판단하다·심판하다')과 "정죄"를 금하고, 그 대신 용서하고 베풀라는 요구다. 38절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은 곡식을 됫박에 꾹꾹 눌러 담아 옷자락 품에 부어 주는 모습을 그린 표현으로 풀이된다.
  • 하나님의 심판 기준으로 읽기: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같은 수동 표현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렇게 읽으면 남을 재는 잣대가 마지막 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재는 잣대가 된다는 경고가 된다.
  •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경고로 읽기: 39-40절은 스스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이끌 수 없고, 제자는 선생을 닮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사와 지도자의 책임을 다룬 말씀으로 읽힌다.
  • 순서에 대한 가르침으로 읽기: 41-42절의 "들보"는 집의 큰 나무 기둥이고 "티"는 작은 부스러기다. 이 비유가 형제를 바로잡는 일 자체를 금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 후에야… 티를 빼리라"는 말처럼, 먼저 자기를 돌아보라는 순서를 가르친다고 본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 판단을 모두 금하는가: "비판치 말라"가 모든 분별과 책망을 금하느냐는 물음이 자주 나온다. 여러 교단의 설교자와 주석가는 이 말씀을 요한복음 7장 24절, 갈라디아서 6장 1절과 함께 읽는다. 그리고 교회의 권징이나 잘못에 대한 권면까지 막는 말씀이 아니라, 위선적이고 가혹한 정죄를 금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개역성경의 "비판"이 현대 한국어에서는 '비평·지적'으로 들리기 쉬워, 원어의 '심판하다'라는 뜻을 함께 설명하기도 한다.
  • 38절의 인용 방식: 38절은 헌금과 물질의 축복을 가르치는 데 자주 쓰인다. 이를 두고 앞뒤 문맥이 판단과 용서를 다루므로, 넉넉하게 베푸는 자비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번영신학처럼 물질적 보상의 약속으로만 읽는 데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 교회에서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는 표현은 교회 밖에서도 관용어처럼 쓰일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교회에서는 공동체 안의 비난과 험담을 경계하는 설교, 그리고 헌금·구제를 권하는 설교에서 이 본문이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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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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