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 단 비문
역사 · 같은 말: 텔단 비문, 텔 단 비석
텔 단 비문은 1993~1994년 이스라엘 북부 텔 단 유적에서 발견된 기원전 9세기 아람어 비석 조각이다. 성경 밖 자료 가운데 '다윗의 집'이라는 말을 담은 가장 이른 사례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배경
텔 단(Tel Dan)은 이스라엘 북부 헤르몬산 기슭에 있는 언덕 유적이다. 요단강의 수원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서 솟는다. 학자들은 이곳을 성경의 단 성읍으로 비정한다. 비정은 옛 지명을 오늘날의 위치에 맞추어 정하는 일을 말한다. '텔'은 여러 시대의 거주층이 겹겹이 쌓여 생긴 언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이 1966년부터 이곳을 오랫동안 발굴했다.
기원전 9세기 중엽 왕국 분열 뒤의 북이스라엘은 다메섹을 수도로 한 아람 왕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되는 과정은 엘리사와 관련하여 열왕기하 8:7-15에 기록되어 있다.
- 같은 시기 예후가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였다(열왕기하 9:24, 9:27). 요람은 아합의 아들이다.
- 하사엘은 이후 이스라엘 영토를 공격했다(열왕기하 10:32-33).
발견과 해독
- 1993년 7월: 발굴단이 성문 근처에서 현무암 비석의 큰 조각(흔히 A 조각이라 부른다)을 찾았다. 이 조각은 후대 건축물에 건축 자재로 다시 쓰인 상태였다고 알려져 있다.
- 1994년: 작은 조각 두 개(B1, B2)가 더 발견되었다.
- 비란과 비문학자 요세프 나베(Joseph Naveh)가 「이스라엘 탐사 저널」(Israel Exploration Journal)에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 해독 결과를 발표했다.
비문은 아람어로 쓰였고 비석의 상당 부분이 사라져 있다. 남은 부분에서 비석을 세운 왕은 하닷 신이 자신을 왕으로 세웠다고 말한다. 이어 이스라엘 왕과 'bytdwd'의 왕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bytdwd'는 대개 '다윗의 집', 곧 다윗 왕조를 뜻하는 말로 읽힌다. 두 왕의 이름은 끝부분만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를 대개 '[요]람'과 '[아하시]야'로 복원한다. 비석을 세운 왕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학자들은 시기와 내용을 근거로 하사엘로 본다.
결과와 영향
이 비문은 성경 밖 자료에서 다윗의 이름이 확인된 첫 사례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일부 학자들은 다윗이 후대에 만들어진 문학적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이 발견은 그 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모압 왕 메사의 비석에서도 '다윗의 집'을 읽을 수 있다는 프랑스 학자 앙드레 르메르의 재판독이 1994년에 나왔다. 텔 단 비문은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와 논쟁
- '다윗의 집' 판독: 다수 학자는 다윗 왕조를 가리킨다고 본다. 반대 견해도 있다. 비문의 다른 곳에서는 낱말 사이에 점을 찍는데 'byt'와 'dwd' 사이에는 구분점이 없다는 점을 들어, 지명이나 신의 칭호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각 A와 B를 잇는 방식과 위작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일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위작설은 학계에서 소수 견해에 머물러 있다.
- 성경 기록과의 차이: 열왕기하는 두 왕을 죽인 이가 예후라고 기록하는데, 비문은 비석의 주인이 죽였다고 주장한다. 이 차이를 두고 여러 설명이 있다. 예후가 하사엘과 손잡았거나 그 영향 아래 움직였다는 설이 있다. 고대 왕의 승전 비문은 공적을 자기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있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입장에서 기록했다는 해석도 있다.
- 의미의 범위: 교회와 신앙 매체에서는 이 비문을 성경의 역사성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자료로 자주 소개한다. 학계에서는 이 비문이 기원전 9세기에 '다윗의 집'으로 불린 왕조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평가한다. 다만 성경 서술의 세부까지 입증하는 자료로 보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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