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옥
인물
정경옥(鄭景玉, 1903~1945)은 일제강점기 한국 감리교의 목사이자 신학자이다. 감리교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한국 최초의 학문적 조직신학 개론서로 꼽히는 『기독교신학개론』(1939)을 썼다.
생애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19년 3·1운동 학생 시위에 참여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났고, 이후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성경을 읽고 그곳에서 만난 한 기독교인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옥한 뒤 일본 유학을 거쳐 감리교 신학교에서 공부해 1927년 3월 졸업했다. 같은 해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주 개렛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이어 노스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비주의를 연구해 석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1년 귀국해 모교인 감리교신학교(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조직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신학 분야이다.
1937년 3월 건강이 나빠져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향 진도로 내려갔으며, 1939년 봄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교수직에 복귀했다. 일제 말기에는 친미파로 몰려 진도경찰서에 구금되었다고 전해진다. 1945년 4월 1일, 광복을 넉 달 앞두고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교수 시절 신학교 학술지 『신학세계』의 주간(편집 책임자)을 맡아 짧은 기간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932년에는 「위기신학」이라는 글로 칼 바르트의 신학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그의 글에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알브레히트 리츨 같은 자유주의 신학 계열 신학자의 영향도 짙게 나타난다.
대표 저서로는 감리교 교리를 풀어 쓴 『기독교의 원리』, 진도에 머물던 시기에 예수의 생애를 설교체로 그린 『그는 이렇게 살았다』(1938), 같은 시기에 쓴 『기독교신학개론』(1939)이 있다. 『기독교신학개론』은 한국인이 쓴 첫 학문적 조직신학 개론서로 평가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정경옥은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놓은 인물로 꼽힌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교단 역사에서 그를 "신앙에서는 보수주의, 신학에서는 자유주의"라는 태도를 지니고 신학의 현대화와 '향토화'(한국 땅에 뿌리내리게 함)를 추구한 신학자로 소개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훗날 토착화 신학의 선구자로도 다루어진다. 연구자들은 그를 장로교의 박형룡과 함께 처음으로 학문적인 신학 저술을 낸 인물로, 또 김재준과 함께 한국 신학계의 방향을 잡은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평가
정경옥은 스스로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에 서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초기 자유주의 신학자로 분류하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 보수 신학 전통과 대비시켜 이해한다. 반면 그를 연구한 감리교 학자들은 그가 신학 이론에 그치지 않고 종교 경험과 경건한 삶을 중시한 점, 교리를 절대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실천을 강조한 점에 주목한다. 그의 신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평가하는 사람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6곳
- 정경옥 - 위키백과
- 정경옥 인물소개 - 교보문고
- 감리교회사 - 기독교대한감리회
- 안수강, 정경옥(鄭景玉)의 실용주의(實用主義) 신학 분석, 기독교사회윤리 제43집(2019)
- 개신교 - 디지털진도문화대전
- 정경옥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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