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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근(宋昌根, 1898~?)은 호가 만우(晩雨)인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이다. 조선신학교(지금의 한신대학교) 설립을 이끌었고,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갔다.

생애

1898년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어났다. 개화사상과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인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고향에 세운 북일학교를 다닌 뒤 간도의 명동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에 독립운동가 이동휘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목사가 되어 민족을 깨우라는 권유를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서울 남대문교회에서 함태영 목사 밑에서 조사(전도사)로 일했고,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을 졸업했다.

192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서 공부했다. 1927년에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 들어가 한경직, 김재준과 함께 공부했다. 이어 웨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1931년 덴버의 아일리프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2년 1월 귀국했는데, 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첫 한국 교회 인물로 꼽힌다.

1950년 8월 한국전쟁 중에 북한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1951년에 숨졌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사역과 업적

  • 산정현교회 목회: 1932년 4월 평양 산정현교회에 조사로 부임했다. 평양신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목사 자격으로 부임하지 못했다. 1933년 당회장(당회를 이끄는 목사)이 되었으나, 진보적 신학 노선 때문에 교회와 갈등을 겪었다. 특히 1935년 유형기가 편집한 단권 성경 주석의 집필에 참여한 일이 문제가 되었다. 이 주석은 성경 무오설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송창근은 1936년 4월 교회를 사임했고, 그 뒤 주기철이 후임으로 부임했다.
  • 성빈학사: 부산으로 내려가 '성빈(聖貧, 거룩한 가난)' 사상을 실천하는 공동체인 성빈학사를 세웠다. 이곳에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존경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 수양동우회 사건: 1937년 10월 흥사단 계열 민족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투옥되었다.
  • 조선신학교 설립: 1939년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자, 이를 대신할 조선신학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고 총무로 일했다. 이후 그 일을 김재준에게 넘기고 1940년부터 김천 황금동교회를 담임했다. 해방 뒤에는 서울 성 바울교회(현 서울성남교회)를 담임했다. 또 조선신학교 교장을 맡아 납북 직전까지 학교를 이끌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송창근은 김재준과 함께 조선신학교를 세워 한국 장로교 안에서 진보 신학의 기틀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조선신학교는 지금의 한신대학교가 되었다. 그가 납북된 뒤 이 학교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만들어졌다. 기장은 함태영·김재준과 함께 그를 교단의 뿌리를 이룬 선현으로 기린다. 한신대학교에는 만우 송창근 기념관이 있고, 만우기념사업회가 그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평가

지지하는 쪽은 그를 신학 교육과 민족 계몽을 하나로 엮은 '민족 목회'의 실천가로 평가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목회자라는 점도 높이 산다. 용인의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그를 순교자로 지정했다.

반면 비판도 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협력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그는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연맹 이사장을 맡았고,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에서도 활동했다. 이 때문에 친일 인물을 정리한 사전에 이름이 실렸다. 또 평양의 보수적 장로교인들은 1930년대에 그의 신학을 '신신학'이라 부르며 비판했다. 이 평가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지금도 다르게 내려진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1. 송창근(宋昌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송창근 - 위키백과
  3. [한국신학의개척자들4] 송창근목사(1) - 한국기독공보
  4. 신학자탐구 만우 송창근 목사 - 국민일보
  5. [주재용] 만우 송창근의 성빈의 삶과 사상(3) - 베리타스
  6. 수양동우회 사건 (만우 송창근 바로보기 12) - 베리타스
  7. 기장 70년 역사의 길잡이…'송암·만우·장공'을 되새기다 - 데일리굿뉴스
  8. 조선신학교 창립 주역 故 송창근 박사 재조명 - 국민일보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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