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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선

인물 · 같은 말: 주남고

주남선(朱南善, 1888~1951)은 경상남도 거창에서 활동한 장로교 목사다. 3·1운동에 참여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해 옥고를 치렀다. 해방 뒤 고려신학교를 세우는 데 참여해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생애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개신교 지도자다. 오형선·고운서 등과 함께 1909년 거창 교회를 세우는 데 관여했다. 지역을 돌며 성경을 보급하는 권서인으로도 일했다. 1919년 거창 지역 만세 운동에서는 형 주남재, 동생 주남수와 함께 앞장섰다(3·1운동과 기독교).

이후 목사가 되어 거창읍교회를 맡았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거창 지역에서 참배가 옳지 않다고 알리며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1940년 7월 16일 진주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해방될 때까지 옥살이를 했다. 풀려난 뒤에는 거창읍교회 목회로 돌아갔고 1951년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해방 뒤 경남노회의 노회장을 지냈다. 1946년 6월 서울에서 열린 남부총회는 조선신학교를 총회 직영 신학교로 정했다. 이에 주남선은 한상동 등과 함께 따로 신학교를 세우는 일에 나섰다. 1946년 6월 5일 진해에서 주남선·한상동·손양원이 중심이 되어 고려신학교 설립기성회를 조직했다. 같은 해 9월 20일 부산에서 학교가 문을 열 때 주남선은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교장 서리는 박윤선이었다. 이 밖에 고려고등성경학교의 설립 이사로 참여했고, 거창성경학교를 세워 교장을 지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고려신학교는 뒷날 고신대학교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뿌리가 되었다. 고신 교단은 주남선이 세상을 떠난 뒤인 1952년 9월, 고려신학교 지지자들이 총로회를 조직하면서 출발한 것으로 정리된다. 고신 쪽에서는 그를 한상동과 함께 고려신학교 설립자로 기린다. 해방 뒤 거창 지역 교회 대부분이 고신 교단에 속하게 된 데에도 그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있다. 정부는 주기철 등과 함께 그에게 훈장을 추서했고, 그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평가

고신 측은 주남선을 신사참배에 끝까지 맞선 신앙의 지도자로 높이 평가한다. 고려신학교 설립도 정통 보수 신학에 따라 목회자를 길러 내려는 시도로 설명한다. 이 설립은 해방 후 한국 장로교 분열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

  • 고려신학교는 총회 직영이 아닌 사설 신학교로 세워졌다.
  • 경남노회는 한때 이 학교의 인허를 취소했다가 다시 뒤집는 결의를 했다.
  • 이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노회 분열과 고신의 분립으로 이어졌다.

고신 안에서도 노회·총회와의 관계에서 더 유연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는 성찰이 나온 바 있다. 한편 주남선이 고려신학교와 맺은 관계는 실무를 이끈 한상동에 비해 상징적인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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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6곳
  1. 거창 지역 개신교권의 독립운동 - 디지털거창문화대전
  2. 고려신학대학원(고려신학교) 초창기와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 코람데오닷컴
  3. 한상동(韓尙東, 1901-1976) 목사 / 신사참배 거부, 고신대학 설립 - 기독타임즈
  4. 한상동과 고신의 정체성 그리고 고신교회의 5가지 과제 - 기독일보
  5.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지켜본 '산증인' 교회 - 뉴스앤조이
  6. 주남선 목사의 생애와 신앙인격 - 기독신앙인물(다음 카페)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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