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곤
인물 · 성경 인물
사르곤은 기원전 8세기 후반 앗수르(아시리아)를 다스린 왕으로, 학계에서는 사르곤 2세라 부른다. 성경에서는 이사야 20:1에 단 한 번 이름이 나온다.
성경의 기록
사르곤의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이사야 20:1에 한 번 나온다. 본문은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에"라고 적는다. 다르단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앗수르 군대의 최고 지휘관을 가리키는 직함으로 이해된다. 아스돗은 블레셋의 주요 성읍이다.
이 사건을 시간 배경으로 삼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녔다(이사야 20:2-3). 이는 애굽과 구스 사람들이 앗수르 왕에게 포로로 끌려갈 것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징이었다(이사야 20:4). 유다 사람들에게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경고였다(이사야 20:5-6).
성경은 사르곤의 생애나 다른 행적을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성경 밖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살만에셀 5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고, 그가 죽은 뒤에는 아들 산헤립이 왕위를 이었다. 산헤립은 열왕기하 18~19장과 이사야 36~37장에 나오는 왕이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사르곤은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유다 주변 민족들을 차례로 정복하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사야에서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경고가 실제 역사 속 사건과 맞물려 선포되었음을 보여 주는 시점 표지 구실을 한다. 신약성경은 사르곤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사마리아를 누가 점령했는가. 열왕기하 17:3-6과 18:9-10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에워쌌고 삼 년 뒤에 성읍이 함락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열왕기하 17:6은 사마리아를 점령한 왕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한편 사르곤의 비문은 그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주민 2만 7천여 명을 끌어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 살만에셀이 함락을 마쳤고, 사르곤은 즉위 초에 그 공을 자기 것으로 기록했다는 견해
- 살만에셀이 포위를 시작했고, 사르곤이 마무리하거나 주민 이주를 실행했다는 견해
이 문제는 북이스라엘 멸망 연대 논의와도 이어진다. 사마리아 함락은 대체로 기원전 722년 또는 721년 무렵으로, 아스돗 정복은 기원전 712년 또는 711년 무렵으로 보지만 연대는 학자마다 다르다.
고고학과의 관계. 사르곤의 이름은 한동안 성경 밖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19세기 중엽 코르사바드에서 그의 궁전 유적과 비문이 발굴되었다. 이 일은 성경 고고학 개론서나 변증 자료에서 성경 기록이 성경 밖 자료로 확인된 예로 자주 소개된다.
이름의 구분. 사르곤 2세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대의 아카드 왕 사르곤과는 다른 인물이다.
한국 교회에서
사르곤은 독립된 설교 주제가 되는 일이 드물다. 주로 이사야 20장을 강해하거나 성경공부에서 이사야서의 역사 배경을 설명할 때 언급된다. 성경 고고학을 소개하는 강의나 교재에서도 성경의 역사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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