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5장 1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전도서 5:15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듯 죽을 때에도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재물의 덧없음과 인생의 유한함을 말할 때 욥기 1:21, 디모데전서 6:7과 함께 자주 인용된다.
문맥
전도서의 화자는 자신을 "전도자"라고 부른다. 히브리어로는 '코헬렛'이며, 흔히 '회중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도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한다(전도서 1:1). 이 책은 전통적으로 솔로몬의 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많은 학자는 후대의 저자가 솔로몬의 이름을 빌려 쓴 글로 본다.
5장 13~17절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본 "큰 폐단", 곧 크게 해로운 일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재물을 지키지만 재난으로 그 재물을 잃는다. 아들을 낳았어도 손에 남은 것이 없다. 15절은 그 사람이 태어날 때처럼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16절은 이것도 큰 폐단이라고 하면서, 바람을 잡는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18~20절에서 전도자는 하나님이 주신 일생 동안 먹고 마시며 수고한 것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장절 구분이 달라서 이 구절을 5장 14절로 매긴다. 한국어 성경은 영어 성경과 같은 구분을 따른다.
해석
- 인간 일반에 대한 진술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구절의 "저"를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 넓혀 읽는다. 이렇게 보면 구절은 죽음 앞에서 재물이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보편적 진술이 된다. 이 읽기는 욥기 1:21에 나오는 욥의 고백과 이 구절을 같은 흐름에 놓는다.
- 앞 절의 부자를 가리킨다고 보는 읽기: 문맥을 따라 "저"를 14절에서 재물을 잃은 부자로 보는 해석도 있다. 그 아들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 구절은 재물을 지키려 애쓴 사람이 결국 빈손이 되는 역설을 드러내는 말이 된다.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원문에서 분명하지 않아 번역본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 청지기적 읽기: 개신교 설교와 주석에서는 이 구절을 디모데전서 6:7과 함께 읽는 경우가 많다. 이 읽기는 재물을 영원한 소유가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으로 본다. 주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청지기 의식이 그 근거가 된다.
- 전도서 전체의 흐름에서 읽기: 이 구절을 허무의 고백으로만 끝내지 말고, 바로 뒤의 "낙을 누림"과 책 끝의 결론인 전도서 12:13-14까지 이어 읽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인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주어진 몫을 감사히 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출발점이 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이 구절의 뜻을 두고 교단 사이에 뚜렷한 논쟁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적용과 관련해 몇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 이 구절만 떼어 인용하면 재물과 노동 자체를 헛되게 보는 비관론이나 금욕주의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문맥에서 전도자는 5:18~20에서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본다.
- 재물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증거로 강조하는 번영신학을 비판하는 쪽에서 이 구절을 근거로 드는 경우가 있다.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의 한자 성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와 뜻이 통하는 말씀으로 소개되곤 한다. 장례예배나 추도예배 설교에서 욥기 1:21과 함께 인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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