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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2-1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야고보서 1:12-14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14절은 시련을 견딘 사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약속하고, 죄로 이끄는 유혹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고난 속의 인내와 죄의 책임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야고보서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야고보서 1:1)에게 보낸 편지이며, 전통적으로 주의 형제 야고보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지는 여러 시련을 기쁘게 여기라는 권면(야고보서 1장 2-4절)으로 시작한다. 12절은 이 주제를 "복이 있도다"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13-14절은 시련이 죄로 이끄는 유혹으로 바뀌는 지점을 다루고, 15절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로 이어진다. 17절은 이와 대비해 온갖 좋은 선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해석

  • 두 뜻의 '시험': 그리스어 '페이라스모스'와 그 동사형은 믿음을 단련하는 '시련'과 죄로 꾀는 '유혹'을 모두 뜻한다. 많은 주석가는 12절을 시련으로, 13-14절을 유혹으로 읽는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둘 다 '시험'으로 옮겼다.
  • 생명의 면류관: '면류관'(스테파노스)은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씌우던 관이다. 이를 영생 자체, 곧 "생명이라는 면류관"으로 보는 읽기가 있다. 인내한 신자가 따로 받을 상으로 보는 읽기도 있다. 같은 표현이 요한계시록 2:10에도 나온다.
  • 책임의 소재: 13-14절은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말고 자기 욕심에서 찾으라는 말로 읽힌다.

논쟁과 쟁점

  • 하나님의 주권과 악: 장로교 등 칼빈주의 전통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다스리시지만 죄를 지으시는 분(죄의 조성자)은 아니라고 본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1절).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전통은 이 구절을 사람의 자유와 책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든다. 두 전통 모두 하나님이 악으로 유혹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이 문제는 예정과 자유의지 논의로 이어진다.
  • 다른 본문과의 관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창세기 22:1)와 주기도문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태복음 6:13)가 이 구절과 어떻게 맞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하나님은 믿음을 단련하는 시련은 허락하시되 죄로 꾀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 욕심은 그 자체로 죄인가: 천주교는 세례받은 사람 안에 남은 욕망이 죄로 기울게 하지만 그 자체로 죄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루터와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은 그것도 죄로 보았다. 두 입장 모두 14-15절을 근거로 인용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시험에 들다'는 말은 교회 생활에서 실망하거나 마음이 상해 신앙이 흔들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도 널리 쓰인다. 이 구절은 그런 상황이나 고난 중의 인내를 다루는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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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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