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 2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창세기 9:25, 함의 저주, 가나안의 저주,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노아가 술에서 깬 뒤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며 형제들의 종이 되리라고 한 말이다. 근대에 '함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데 쓰인 역사가 있어, 성경 오용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문맥
홍수 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셔 취한 채 장막 안에 벌거벗고 누워 있었는데, 아들 함이 그 모습을 보고 밖의 두 형제 셈과 야벳에게 알렸다. 셈과 야벳은 뒷걸음쳐 들어가 옷으로 아버지를 덮었다(9:20-23). 술에서 깬 노아는 함이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한다(9:25-27).
함의 잘못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내고 조롱한 불효로 보는 해석이 일반적이지만, 레위기 18장의 "하체를 범하다"는 표현과 연결해 더 심각한 죄를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해석
- 가나안 정복의 배경으로 읽기: 이 이야기는 훗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주민을 다스리게 되는 역사(여호수아, 사사기)를 미리 설명하는 성격이 있다고 본다. 저주가 함이 아니라 가나안에게 내려진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 예언적 선언으로 읽기: 노아의 말을 하나님의 뜻을 대언한 예언으로 보는 해석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범위는 가나안 족속에 한정된다고 본다.
- 사람의 말로 읽기: 본문에 하나님이 저주하셨다는 말이 없고, 술에서 깬 노아가 한 말일 뿐이라는 점에 주목해, 이 구절에 신적 권위를 지나치게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논쟁과 쟁점
중세 이후, 특히 17~19세기에 함을 아프리카인의 조상으로 보고 이 구절을 흑인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는 해석이 유럽과 미국에 퍼졌다. 미국 남부의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이 노예제를 옹호하며 이 구절을 인용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단과 학자들은 이를 명백한 오용으로 본다. 저주의 대상은 함이 아니라 가나안이고, 본문 어디에도 피부색이나 아프리카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남침례회는 1995년 노예제와 인종 차별을 옹호했던 과거를 사과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또 이 구절은 조상의 죄가 자손에게 저주로 내려온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에스겔 18:20("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을 들어 반박하는 견해가 많다. 가계저주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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