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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피어선

인물 · 같은 말: 피어선, 아더 피어선

아서 피어선(1837~1911)은 미국 장로교 목사이자 성경교사, 선교운동가이다. 1910년 조선을 방문해 성경학교 설립을 약속했고, 그의 사후 이 약속에 따라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 세워졌다.

생애

아서 태펀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은 1837년 3월 6일에 태어난 미국 장로교 목사이다. 한국에서는 '피어선(皮漁鮮)' 또는 '아더 피어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설교자이자 성경교사로 활동했으며, 19세기 후반 여러 교파가 함께한 선교운동의 지도자로 꼽힌다.

1910년 12월 초 조선을 방문해 선교사들에게 성경을 풀어 가르쳤다. 이때 한국 교인들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성경공부에 힘쓰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선교사들의 요청에 따라 성경학교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병이 깊어져 귀국한 뒤 1911년 6월 3일 뉴욕 브루클린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피어선은 목회와 함께 성경 교육과 해외 선교 동원에 힘썼다. 평택대학교는 그를 성경과 선교, 그리고 교파를 넘어선 협력(연합)을 강조한 설교자·성경교사·신학자·선교운동가로 소개한다. 많은 기독 청년이 해외 선교에 헌신하도록 이끈 인물로도 평가된다. CTS기독교TV의 특집 다큐멘터리를 다룬 교계 언론 보도는 한국에 온 첫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와 침례교 선교의 첫 선교사 말콤 펜윅도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왔다고 전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에 남긴 가장 직접적인 자취는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다. 피어선이 세상을 떠난 뒤 유족과 후원자들이 그의 뜻을 이어 1912년에 이 학원을 열었다. 처음에는 서울의 협성신학교 안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피어선기념위원회(이사장 로버트 스피어, 총무 델러반 피어선)의 후원을 받아 1914년 무렵 서울 신문로에 부지를 마련했다. 1917년에는 본관을, 1918년에는 남자 기숙사를 지었다. 언더우드가 초대 이사장으로 설립을 이끌고 초대 원장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원은 북장로교 선교부와 남·북감리교 선교부가 함께 운영한 초교파 연합 교육기관이었다. 1935년 대공황의 여파로 두 감리교 선교부가 운영에서 물러난 뒤에는 북장로교 선교부가 운영을 주도했다. 학교 측은 그 뒤에도 초교파 정신을 지켰다고 설명한다. 학원은 평신도 성경교사를 기르는 일과 장로교·감리교 신학교에 진학할 학생들을 미리 가르치는 예비 과정(예과) 역할을 맡았다.

학원은 1968년 피어선기념성서신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1년 지금의 평택 지역으로 옮겨 피어선성서신학교로 개교했고, 1990년 4년제 피어선대학으로 승격했다. 1996년에는 평택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평가

평택대학교는 피어선을 '창학자(학교를 처음 세운 사람)'로 기린다. 학교는 피어선기념성경연구원을 두고 기념 세미나를 열고 있다. 다만 피어선은 학교 설립을 약속한 지 반년쯤 뒤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학원을 실제로 세우고 운영한 것은 유족과 기념위원회, 그리고 한국에 와 있던 선교사들이었다. 또한 언더우드·펜윅에게 끼친 영향처럼 그의 역할을 크게 보는 서술은 주로 기념 사업과 관련된 자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따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6곳
  1. 평택대학교 역사
  2. 아서 태펀 피어슨 - 위키백과
  3. 아더 피어선 선교사의 복음 발자취 - 침례신문
  4. 아더 피어선 박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 아이굿뉴스
  5. 평택대 '창학자' 피어선 박사 서거 115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 크리스천투데이
  6. 평택대학교 - 나무위키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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