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티 윌콕스 노블
인물 · 같은 말: 매티 노블, Mattie Wilcox Noble
매티 윌콕스 노블(1872~1956)은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이다. 1892년부터 1934년까지 남편 윌리엄 아서 노블과 함께 서울·평양·수원 등지에서 여성 전도와 교육에 힘썼고, 42년 동안 쓴 선교 일지를 남겼다.
생애
187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Wilkes-Barre)에서 태어났다. 와이오밍 신학교(Wyoming Seminary)에서 윌리엄 아서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을 만나 1892년에 결혼했다. 같은 해 남편이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로 한국에 오게 되자 함께 들어왔다. 남편은 1892년 10월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34년까지 42년 동안 서울과 평양, 그리고 수원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에서 지냈다. 1956년에 세상을 떠났다. 큰딸 루스는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의 장남 헨리 도지 아펜젤러와 결혼했고, 부부는 한국에서 선교와 교육 사업을 이어 갔다.
사역과 업적
남편은 서울·평양·수원 등지에서 오랫동안 감리사로 일했다. 감리사는 감리교에서 한 지역의 교회들을 돌보고 감독하는 직책이다. 그동안 매티 노블은 남편을 도우며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도와 교육을 맡았다. 평양 남산현교회를 중심으로 여성 성경공부 모임과 어린이를 위한 유년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이 두 가지가 한국에서 처음 생긴 여성 성경공부 모임이자 유년 주일학교로 알려져 있다.
함께 일한 한국인 전도부인(교회에서 전도를 맡은 여성 사역자)들이 선교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부부가 함께 사역하고, 여성 지도자로 나서고, 지방을 돌며 전도하는 본보기를 보였다. 또 교회를 세우고 여성들을 계몽했다.
생전에 한국에서 펴낸 책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강도』(1916), 『자모권면』(1921), 『승리의 생활』(1927)이 있다.
선교 일지
1892년부터 1934년까지의 선교 생활을 꼼꼼하게 일지로 남겼다. 이 일지는 우리말로 옮겨져 『노블일지 1892-1934』로 출간되었다. 일지에는 1893년 3월 동대문교회를 찾아간 일처럼 초기 교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선교사 가정의 일상도 자세히 적혀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여성 성경공부와 유년 주일학교는 한국 감리교회에서 여성 신도 교육과 어린이 신앙 교육이 시작된 초기 사례로 꼽힌다. 그의 일지는 초기 한국 감리교회와 선교사 사회를 연구하는 자료로 쓰인다. 공식 보고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선교 현장의 일상과 한국인 협력자들의 활동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평가
연구자들은 노블의 일지를 공적 문서와 다른 개인 기록으로 평가한다. 선교본부에 보낸 보고서나 편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감상과 의견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는 일지에서 남편 선교사나 독신 여성 선교사와 구별되는 '부인 선교사'의 삶을 읽어 낸다. 출산과 자녀 양육, 질병과 죽음, 집안일, 손님 접대 같은 내용이다.
같은 연구는 노블이 당시 영미 중산층의 빅토리아 시대 가치관에 따라 자기 역할을 이해했다고 분석한다. 이 가치관은 가정과 자녀를 '여성의 영역'으로 보았다. 또 아내는 인격적으로 남편과 동등하지만, 그 역할은 남편을 돕는 데 머문다고 여겼다.
다른 연구는 노블을 둘러싼 인간관계망에 주목한다. 가족과 고향의 후원, 교파를 넘어선 선교사들 사이의 협력, 한국인 전도부인들과의 관계가 선교 사업을 이어 가고 넓혀 가는 바탕이었다고 본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4곳
- 매티 노블(Mattie W. Noble)의 일지 : 한 부인 선교사의 삶과 '여성의 영역(Women's Sphere)' (KCI)
- 노블 부인(Mattie Wilcox Noble)의 선교활동과 사회관계망 (조선혜, 한국기독교와 역사 39호, 2013)
- 매티 윌콕스 노블 작가 소개 (YES24)
- 선교사와 만남의 복 - 매티노블 선교사의 조선회상(1) (교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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