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역사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서울 정동에 세운 중등과정 사립학교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로 꼽히며, 지금의 배재중·고등학교로 이어진다.
배경
나라의 문을 연 뒤 1880년대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선교와 서양 학문 보급을 함께 내건 근대식 학교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 북감리회(미국 감리교회의 북부 교단)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는 1885년 6월 인천으로 다시 들어온 뒤 7월에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한 달 먼저 와 있던 의사 윌리엄 스크랜턴에게서 집 한 채를 사들이고, 방 두 칸 사이의 벽을 헐어 작은 교실을 만들었다. 미국 공사관의 폴크가 아펜젤러에게 영어학교를 세울 뜻이 있다고 고종에게 전하자, 고종이 학교 사업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개
- 1885년 8월 3일: 아펜젤러가 이겸라·고영필 두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 측은 이날을 창립일로 삼는다.
- 1886년 6월 8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학교 측 연혁에 따르면, 고종이 '인재를 기른다'는 뜻의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내렸다. 현판 글씨는 당대의 명필 정학교가 썼고, 외무아문의 김윤식을 거쳐 아펜젤러에게 전해졌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등은 현판을 받은 날을 1887년 2월 21일로 적고 있어 날짜에 이설이 있다. 배재고등학교는 6월 8일을 개교기념일로 삼고 있다.
- 1889년: 중국에서 선교하던 올링거를 불러 활판소(인쇄소)를 맡기고, 한글 활자를 만들어 성경을 인쇄했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과 『매일신문』도 이곳에서 펴낸 것으로 전한다.
- 1895년: 대학부를 설치하여 영문학과·국한문학과·신학과를 두었다.
- 1896년: 학생들이 학생회인 협성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협성회회보』를 펴냈다.
- 1909년: 배재고등학당으로 인가를 받았다.
- 1916년: 중등과정의 배재고등보통학교와 고등과정의 배재고등학당으로 나뉘었다. 같은 해 붉은 벽돌의 동관이 완공되었다.
- 1925년: 조선총독부가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없앴고, 배재고등학당도 문을 닫았다.
- 1937년·1951년: 1937년 배재중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1951년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로 나뉘었다.
조선 정부도 이 학교를 활용했다. 정부가 배재학당에 학생 200명을 보내 교육을 맡기기로 한 약정이 사료로 전한다.
결과와 영향
배재학당은 성경·영어·한문·천문·지리·생리·수학 같은 과목을 서양식 방법으로 가르쳤다. 야구·축구·정구 등 서양 운동을 소개했고, 토론회와 연설회처럼 자기 의견을 말하는 훈련도 장려했다. 학당훈(학교의 가르침)인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 當爲人役)", 곧 '크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겨야 한다'는 마태복음 20:26에서 따온 말이다. 이승만·주시경·김소월·나도향 등이 이 학교를 거쳤다.
배재고등학교는 1984년 서울 강동구 고덕동으로 옮겼다. 정동에 남은 동관은 2001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7월 24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학교법인 배재학당은 배재대학교도 운영한다.
평가
배재학당은 외국인이 세운 첫 근대식 사립학교로 널리 평가된다. 한국 근대 교육이 시작된 곳이자 한국 감리교의 초기 선교를 보여 주는 기관으로 기억된다. 같은 시기 감리교 선교부가 세운 이화학당과 함께 기독교 학교의 첫 사례로 자주 함께 언급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학교가 개화기에는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려는 운동에,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운동에 이바지했다고 적는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는 조선 정부가 이 선교학교를 자신들의 정책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통로로 삼으려 했다는 점도 짚는다. 설립 시점은 수업을 시작한 1885년으로 보는 견해와 교명을 받은 1886년으로 보는 견해가 함께 쓰인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9곳
- 배재학당(培材學堂)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배재고등학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배재대학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배재학당역사박물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배재학당 -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 배재 학당 설립 - 사료로 본 한국사(국사편찬위원회)
- 학당연혁 - 배재대학교
- [오늘과내일] 최초의 근대식 학교 배재학당 - 중도일보
- 중구역사문화자원 Database -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