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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숙은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이끈 장로교 목사 한상동의 아내이다. 1921년 한상동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김차숙은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언제 태어나고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21년 5월 31일 김해 출신의 한상동과 결혼한 것으로 전한다. 한상동은 이때 다대포의 한 사립학교 교사였다. 한상동은 결혼하고 몇 해 뒤인 1924년에 다대포교회 전도사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교회 밖에서 가정을 이룬 뒤 남편이 먼저 신앙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차숙이 언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역과 업적

한상동은 일제강점기에 주기철 목사와 함께 신사참배(일본 신사에 절하라는 강요) 거부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로 꼽힌다. 그의 아내인 김차숙도 남편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되는 동안 그 고난을 함께 겪었다.

김차숙의 이름이 교회사에 직접 나오는 대표적인 기록은 해방 직후의 일이다. 1945년 8월 18일, 김차숙이 셋집을 얻어 살던 평양의 집 뜰에서 해방 감사와 출옥 성도(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되었다가 해방으로 풀려난 신자) 환영 예배가 열렸다고 전한다. 이 예배는 한상동이 인도하였고, 1천 명가량이 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리에서 한상동은 순교한 주기철의 신앙을 본받고 그 가족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김차숙이 직분을 맡거나 직접 사역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신사참배 거부운동 지도자의 가족으로서 남편이 옥에 갇힌 동안 집안을 지켰다. 해방 직후에는 출옥 성도들이 처음으로 크게 모인 예배에 자신이 살던 곳을 내준 인물로 기억된다. 한상동은 해방 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형성에 중심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따라서 김차숙도 고신 교단의 초기 역사와 이어진 인물로 언급된다.

평가

김차숙만을 따로 다룬 연구나 평가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그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남편 한상동의 연보와 전기 속에 짧게 나온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다룬 교회사 서술에서는 투옥된 목회자의 가족, 특히 사모들이 겪은 고난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알려진 바 없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1곳
  1. 한상동 - 위키백과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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