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도지 아펜젤러
인물 · 같은 말: 엘라 아펜젤러
엘라 도지 아펜젤러(1854~1915 무렵)는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의 아내이다. 1885년 남편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초기 개신교 선교사 가정의 한 사람이다.
생애
1854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지 워싱턴 도지, 어머니는 데버라 그리즈올드로 알려져 있다. 1884년 12월 17일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서 헨리 아펜젤러와 결혼하였다. 결혼식은 헨리 아펜젤러가 다니던 랭커스터 제일감리교회에서 열렸다. 같은 달 헨리 아펜젤러가 조선 선교사로 정해지자, 부부는 함께 선교지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부부는 인천 제물포에 닿았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이 조선에 막 정변이 일어나 젊은 여성이 머물기에는 위험하다며 상륙을 말렸다. 이 때문에 부부는 한동안 일본에 머물렀다가 다시 조선으로 들어왔다. 제물포에 닿았을 때 헨리 아펜젤러가 아내를 먼저 배에서 내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에서 1남 3녀를 두었다. 1902년 6월 남편 헨리 아펜젤러는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 회의에 가던 길에 어청도 앞바다에서 배가 서로 부딪혀 숨졌다. 시신은 찾지 못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엘라는 미국에서 지냈으며, 1912년 랭커스터에서 미국 저술가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에게 집안 소식을 적어 보낸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1915년 9월 30일 코네티컷주 윌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자료 가운데는 사망 연도를 1916년으로 적은 것도 있다. 묘는 뉴욕주 베를린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남편을 기리는 비석도 같은 곳에 함께 세워졌다고 한다.
사역과 업적
엘라 도지 아펜젤러는 한국 감리교 역사가 시작된 첫해에 남편과 함께 들어온 선교사 가정의 일원이다. 남편이 배재학당을 세우고 정동에서 교회를 일구는 동안 서울의 선교사 가정을 꾸렸다. 1889년 남편이 남부 지방을 돌아볼 때 쓴 일기에도 아내와 딸의 소식이 나온다. 다만 엘라가 혼자서 맡은 교육·전도 사역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엘라의 영향은 주로 자녀들을 통해 이어졌다. 1885년 11월 9일 태어난 맏딸 앨리스 리베카 아펜젤러는 개신교 선교사 가정에서 조선 땅에 태어난 첫 아이로 알려져 있다. 앨리스는 훗날 이화학당의 제6대 당장을 지내며 학교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아들 헨리 도지 아펜젤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재학당 교장을 맡았다. 이렇게 아펜젤러 집안은 2대에 걸쳐 한국의 감리교 교육 기관과 이어지게 되었다.
평가
엘라 도지 아펜젤러는 흔히 한국에 들어온 첫 감리교 선교사 부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엘라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남편의 생애와 집안 이야기 속에 짧게 나온다. 그래서 엘라가 혼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아직 분명히 정리되지 않았다. 생몰 연도와 자녀의 출생 연도도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앞으로 1차 사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 헨리 아펜젤러 - 위키백과
- 배재학당 세워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 기른 아펜젤러 - 민들레
- H.G. 아펜젤러: "최후의 순간까지 따르겠나이다." - 당당뉴스
- 헨리 아펜젤러 - 나무위키
- 2화 아펜젤러 남부순행 일기 8월 16일 - KMC뉴스
- Ella Jane Dodge Appenzeller (1854-1915) - Find a Grave
- Henry Appenzeller - Wikipedia
- Letter from Ella D. Appenzeller to William Elliot Griffis, April, 1912 - Rutgers RU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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