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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와 해석이 있는 창세기전 · 24편 / 모두 50편

우물가에서 만난 사람

창세기 24장을 장면마다 성경 본문과 함께 풀어 쓴 글입니다. 굵은 글씨는 성경 본문(개역한글)입니다. · 소설로 보기

늙은 종의 맹세 1-9절

사라를 막벨라 굴에 장사한 뒤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많이 늙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남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안 살림을 모두 맡아 온 늙은 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손을 자기 넓적다리 밑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앞에서 맹세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가나안 땅 사람들의 딸 가운데서 이삭의 아내를 고르지 마라."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4절)

종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여자가 저를 따라 이 먼 땅까지 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드님을 주인님의 고향으로 모시고 가야 합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고향에서 떠나게 하시고, 이 땅을 자손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7절 중)

하나님이 보내시는 심부름꾼이 먼저 가서 길을 열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여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이 맹세는 너와 상관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다만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는 일만은 안 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넓적다리 밑에 손을 넣고 맹세했습니다.

우물가의 기도 10-21절

종은 주인의 낙타 열 마리를 끌고 길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낙타를 약대라고 부릅니다. 낙타 등에는 주인의 좋은 물건들이 실렸습니다. 종은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해가 기울 무렵이었습니다. 종은 성 밖 우물가에 낙타들을 꿇어앉혔습니다. 성안의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시간이었습니다.

종은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2절)

'순적히'는 일이 막힘없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종은 표 하나를 구했습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할 때 "드세요, 낙타들에게도 먹이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소녀가 있으면, 그 사람이 이삭을 위해 정하신 사람인 줄 알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다 마치기도 전이었습니다. 한 소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이름은 리브가였습니다. 나홀과 그 아내 밀가가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리브가가 우물로 내려가 물을 채워 올라왔습니다. 종이 달려가 물을 조금 마시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리브가는 "드세요" 하며 얼른 항아리를 손에 내려 주었습니다.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19절)

리브가는 서둘러 항아리의 물을 짐승 물통인 구유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물로 달려갔습니다. 목마른 낙타 열 마리를 다 먹이려면 몇 번이고 오르내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21절)

누구의 딸이냐 22-27절

낙타들이 다 마시자, 종은 금고리 하나와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꺼내 주었습니다. 고리는 반 세겔, 손목고리는 열 세겔 무게였습니다. 세겔은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너는 누구의 딸이냐? 네 아버지 집에 우리가 묵을 곳이 있겠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24절)

리브가는 짚과 보리도 넉넉하고 묵을 곳도 있다고 했습니다. 주인의 동생 집안이었습니다. 종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27절 중)

라반의 집 28-33절

리브가는 달려가서 어머니 집에 이 일을 알렸습니다. 리브가에게는 라반이라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라반은 누이가 찬 고리와 손목고리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한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라반은 곧장 우물로 달려갔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었습니다.

라반이 가로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섰나이까 내가 방과 약대의 처소를 예비하였나이다 (31절)

집에 들어가자 라반은 낙타의 짐을 내리고 짚과 보리를 주었습니다. 종과 함께 온 사람들에게 발 씻을 물도 내왔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종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33절 중)

먼 길을 왔으니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래도 맡은 일을 먼저 털어놓겠다고 했습니다. 라반이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종이 들려준 이야기 34-49절

그가 가로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34절)

종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양과 소, 은과 금,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라가 늙어서 아들을 낳았고, 주인은 가진 것을 모두 그 아들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주인이 시킨 맹세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가 품었던 걱정과 주인의 대답도 말했습니다. 오늘 우물가에서 드린 기도,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나타난 일도 그대로 전했습니다. 리브가의 코에 고리를 꿰어 주고 손에 손목고리를 끼워 준 일도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종은 대답을 청했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찌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49절)

어느 쪽이든 말해 주면 자기가 갈 길을 정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가겠나이다 50-61절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했습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0절)

리브가가 여기 있으니 데려가서 주인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종은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했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으로 된 장신구와 옷을 꺼내 리브가에게 주었습니다. 오빠와 어머니에게도 귀한 물건을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먹고 마시고 묵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종은 주인에게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는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함께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종은 여호와께서 길을 열어 주셨으니 붙잡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가족은 리브가를 불러 직접 묻기로 했습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8절)

리브가는 왜 망설이지 않았을까요? 성경은 그 마음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짧은 대답 하나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가족은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그 일행과 함께 떠나보냈습니다. 떠나는 리브가에게 축복도 해 주었습니다.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찌어다 (60절)

리브가는 여종들과 함께 낙타에 올라 그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저물녘의 들판 62-67절

그 무렵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에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삭은 가나안 남쪽 땅인 남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 때였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63절)

리브가도 눈을 들어 이삭을 보았습니다. 리브가는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물었습니다. "들에서 걷다가 우리 쪽으로 오는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주인이십니다."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습니다. 종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삭에게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이삭은 어머니를 잃은 뒤였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데리고 어머니 사라가 지내던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6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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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장 본문 읽기 소설로 보기 처음 오신 분을 위한 요약

이 글은 성경 본문이 아니라, 본문의 줄거리와 뜻을 쉽게 전하려고 풀어 쓴 글입니다. 본문에 없는 묘사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며, 자세한 해석은 교단과 전통에 따라 다릅니다. AI가 쓴 초안에서 시작한 글이니 본문과 다른 곳이 보이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