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보는 창세기전 · 24편 / 모두 50편
우물가의 저녁
창세기 24장을 한 편의 소설로 풀어 쓴 글입니다. · 풀이와 해석이 있는 글로 보기
장막 안에는 등불 하나가 타고 있었다. 기름 타는 냄새가 낮게 깔렸고, 바깥에서는 밤바람이 휘장을 두드렸다.
아브라함은 늙었다. 수염은 서리처럼 희었고, 지팡이를 쥔 손등에는 핏줄이 굵게 불거져 있었다. 그러나 장막 너머 언덕마다 그의 양과 소가 흩어져 있었고, 낙타와 나귀의 울음이 밤새 끊이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다. 다만 사라의 장막은 비어 있었다. 그 장막에 등불이 켜지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날 밤 아브라함은 한 사람을 불렀다. 그의 집안 모든 살림을 도맡아 온 늙은 종이었다. 종이 들어와 무릎을 꿇자 아브라함이 말했다.
"네 손을 내 허벅지 밑에 넣어라."
종은 잠시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하나님이시요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두고 내게 맹세하여라. 너는 내가 사는 이 땅,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내 아들의 아내를 고르지 마라.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를 데려오너라."
등불의 심지가 지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종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만일 그 여인이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 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제가 주인의 아드님을 모시고 주인께서 떠나오신 그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아브라함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해졌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가 태어난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고 맹세하셨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그분이 천사를 네 앞서 보내실 것이니, 너는 거기서 내 아들의 아내를 데려오너라. 만일 여인이 너를 따라오려 하지 않으면 너는 이 맹세에서 풀려난다. 다만 내 아들만은 결코 그리로 데려가지 마라."
종은 주인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이 일을 두고 맹세했다.
얼마 뒤 종은 주인의 낙타 가운데 열 마리를 끌어냈다. 낙타 등에는 주인의 집에 있는 좋은 것들이 실렸다. 금과 은으로 된 패물이 있었고, 접어 묶은 고운 옷들이 있었다. 몇몇 젊은 종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북쪽으로, 다시 동쪽으로 걸었다. 낮이면 햇볕이 모래 위에서 일렁였고 낙타의 방울 소리만이 길을 채웠다. 밤이면 하늘이 땅까지 내려와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그렇게 날이 쌓이고 쌓인 끝에 그들은 메소보다미아에 이르렀다. 그곳에 나홀의 성이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성벽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성 밖 우물 둘레의 돌들이 붉게 물들었다. 종은 낙타들을 우물 곁에 꿇어앉혔다. 낙타들은 긴 목을 늘어뜨리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저녁이었다. 성의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다.
종은 우물 곁에 서서 먼지 묻은 손을 모았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셔서 제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이 우물 곁에 서 있겠습니다. 성 안 사람들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것입니다. 제가 한 소녀에게 '그대의 물동이를 기울여 내가 마시게 해 주오' 하고 청할 때, 그가 '드십시오,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그가 바로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해 정하신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그로써 주께서 제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신 줄 알겠습니다."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이었다. 성문 쪽에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리브가였다. 아브라함의 아우 나홀과 그 아내 밀가가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다.
소녀는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아직 어떤 남자도 가까이한 적 없는 처녀였다. 그는 우물로 이어진 돌계단을 내려가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올라왔다. 물동이 가장자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노을빛에 반짝였다.
종이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대 물동이의 물을 조금 마시게 해 주오."
"드십시오, 나리."
소녀는 서둘러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려 손에 받쳐 들고 그에게 기울였다. 시원한 물이 마른 입술을 적셨다. 종이 다 마시자 소녀가 말했다.
"당신의 낙타들을 위해서도 물을 길어, 실컷 마시게 하겠습니다."
소녀는 물동이의 남은 물을 구유에 쏟아 붓고는 다시 우물로 달려 내려갔다. 물을 길어 올라와 붓고, 다시 내려갔다. 낙타 열 마리의 목마름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가 거듭 이어졌고, 구유에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저녁 공기를 울렸다.
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여호와께서 과연 이 길을 형통하게 하셨는지 알고자 하는 눈빛이었다.
마지막 낙타가 고개를 들었다. 종은 짐 속에서 금 코걸이 하나를 꺼냈다. 무게가 반 세겔 나가는 것이었다. 무게가 열 세겔 나가는 금팔찌 한 쌍도 꺼냈다. 그는 그것들을 소녀에게 주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의 딸이오? 내게 말해 주오. 그대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묵을 만한 곳이 있겠소?"
"저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
소녀가 덧붙였다.
"저희 집에는 짚과 여물도 넉넉하고, 묵으실 곳도 있습니다."
종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여호와께 엎드려 경배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주께서 내 주인에게 베푸시는 인자와 성실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이끄셔서 내 주인의 아우의 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소녀는 몸을 돌려 달렸다. 어머니의 집으로 가서 이 일을 모두 알렸다.
리브가에게는 라반이라는 오라비가 있었다. 라반은 누이의 코에 걸린 금고리와 손목에 끼워진 팔찌를 보았고,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곧장 우물로 달려 나갔다. 그 사람은 아직 우물가, 낙타들 곁에 서 있었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분이여, 들어오십시오. 어찌 밖에 서 계십니까? 방을 마련해 두었고, 낙타들이 쉴 곳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종은 그 집으로 들어갔다. 라반은 낙타의 짐을 내리고 짚과 여물을 주었다. 종과 그와 함께 온 이들의 발을 씻을 물을 내왔다. 먼 길의 먼지가 대야 속에서 흐려졌다. 이윽고 음식이 차려졌다. 빵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그러나 종은 손을 대지 않았다.
"제가 온 까닭을 말씀드리기 전에는 먹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등불 아래, 종은 몸을 바로 세웠다.
"저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여호와께서 제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그분은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양과 소, 은과 금,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주셨습니다. 제 주인의 아내 사라께서는 늙은 나이에 아들을 낳으셨고, 주인께서는 가진 것을 모두 그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는 주인이 장막 안에서 시킨 맹세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들려주었다. 가나안 사람의 딸 가운데서 아내를 고르지 말고 아버지의 집, 친족에게로 가라 한 말을. 여인이 따라오지 않으면 어찌하느냐고 물었을 때, 여호와께서 천사를 함께 보내 길을 형통하게 하시리라 한 주인의 대답을. 친족이 딸을 내주지 않으면 맹세에서 풀려나리라 한 말까지.
"오늘 저는 우물에 이르러 기도했습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제가 걷는 이 길을 형통하게 하시려거든, 물 길러 나온 처녀에게 물을 청할 때 '드십시오, 당신의 낙타들을 위해서도 긷겠습니다' 하고 답하는 이가 주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해 정하신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속으로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는 물을 청한 일과 소녀가 서둘러 물동이를 내린 일, 낙타들에게까지 물을 먹인 일을 차례로 이야기했다. 누구의 딸이냐는 물음에 브두엘의 딸이라는 대답을 듣고, 그 코에 고리를 걸고 손목에 팔찌를 끼워 준 일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는 머리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바른길로 이끄셔서 내 주인 아우의 딸을 주인의 아들에게 맞아들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인자와 진실로 내 주인을 대하시려거든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더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갈 길을 정하겠습니다."
방 안이 고요해졌다. 등불만이 흔들렸다. 이윽고 라반과 브두엘이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우리가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소.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려가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가 당신 주인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시오."
아브라함의 종은 그 말을 듣자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했다. 그러고는 짐을 풀어 금과 은으로 된 패물과 옷을 꺼내 리브가에게 주었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에게도 값진 선물을 주었다. 그제야 종과 그 일행은 먹고 마셨다. 그리고 그 밤을 거기서 묵었다.
아침이 밝았다. 종이 일어나 말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 주인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를 며칠만,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있게 해 주시오. 그 뒤에 떠나게 하겠소."
"저를 붙잡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제 길을 형통하게 하셨으니, 저를 보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불러 직접 물어봅시다."
리브가가 불려 왔다.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비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
"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그 일행과 함께 떠나보냈다. 떠나는 리브가에게 그들이 축복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사람의 어머니가 되어라. 네 자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게 하여라."
리브가는 일어나 여종들과 함께 낙타에 올랐다. 낙타가 앞다리를 펴고 몸을 일으키자 성벽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들은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 왔던 길을 되짚어 떠났다.
그 무렵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에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남쪽 땅에 살고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 이삭은 들로 나갔다. 바람이 마른 풀을 쓸었고 하늘 끝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홀로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눈을 들었다. 지평선 저편에서 낙타들이 오고 있었다.
낙타 위에서 리브가도 눈을 들었다. 그리고 들판의 그 사람을 보았다. 리브가는 낙타에서 내렸다.
"저기 들판을 걸어 우리 쪽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주인이십니다."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종은 이삭에게 다가가 자기가 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장막 안의 맹세에서부터 저녁 우물가의 일까지, 먼 길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이삭은 리브가를 데리고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오래 비어 있던 그 장막에 다시 등불이 켜졌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사랑했다. 어머니를 여읜 뒤로 이삭은 그제야 위로를 얻었다.
이 글은 성경 본문이 아니라, 본문의 줄거리를 소설로 풀어 쓴 글입니다. 사건과 이름과 숫자는 본문을 따랐고, 풍경과 몸짓 같은 묘사는 읽는 맛을 위해 보탠 것입니다. AI가 쓴 초안에서 시작한 글이니 본문과 다른 곳이 보이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