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2장 7-1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욥기 42:7-10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세 친구를 꾸짖고 욥의 중보기도를 받아 그의 곤경을 돌이켜 갑절로 회복시키는 욥기의 결말 장면이다. 욥의 말이 "정당하다"는 평가의 뜻과 회복을 어떤 성격으로 볼지가 자주 논의된다.
문맥
욥기 38~41장에서 여호와가 폭풍 가운데서 말하고, 욥이 42장 1~6절에서 응답한다. 그 뒤 책은 1~2장처럼 산문(운율 없는 줄글)으로 돌아와 결말을 맺는다. 이 단락에서 여호와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를 대표로 세 친구에게 노한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한 말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이유이며, 이 말은 두 번 되풀이된다. 친구들은 번제를 드리고 욥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 뒤 여호와는 욥의 곤경을 돌이키고 이전 소유의 갑절을 준다. 32~37장에서 길게 말한 엘리후는 이 단락에 나오지 않는다.
해석
- '옳게 말했다'는 평가의 범위: 여호와는 38장 2절에서 욥을 꾸짖었고, 욥도 42장 6절에서 회개한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이 평가가 욥의 말 전부를 승인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친구들은 고난을 곧 죄의 벌로 보는 인과응보 논리를 욥에게 잘못 적용했다. 이와 달리 욥은 하나님께 직접 정직하게 호소했다는 점에서 '옳았다'고 보는 읽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 중재자로서의 욥: 욥을 정죄하던 친구들이 오히려 욥의 기도로 용서받는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설교에서는 이 구도를 근거로 욥을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미리 보여 주는 인물로 읽기도 한다. 9장과 16장에서 자기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를 찾던 욥이 이제 친구들의 중재자가 된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 회복의 순서: 10절은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회복이 있었다고 적는다. 이를 근거로 용서와 화해가 회복에 앞선다는 적용이 흔하다.
- 역사비평적 읽기: 학계 일부는 산문 틀(1~2장, 42장 7~17절)과 운문 대화가 따로 형성되었다가 합쳐졌다고 본다. 엘리후가 결말에 등장하지 않는 점을 그 근거의 하나로 든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갑절" 회복을 믿음에 대한 보상 공식으로 설교하는 번영신학식 읽기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욥기 전체가 바로 그런 인과응보 논리를 친구들의 잘못으로 그렸다는 반론이 있다. 반론하는 쪽은 회복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며, 고난을 견딘 대가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자녀의 수가 이전과 같다는 점(1장 2절, 42장 13절)을 두고 해석이 나뉘기도 한다. 먼저 죽은 자녀도 영원히 잃은 것이 아니므로 실제로는 자녀도 갑절이라는 해석이 전해지지만, 본문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갑절의 축복"이라는 표현이 설교와 기도에서 자주 쓰인다. 이 구절은 고난 뒤의 회복과 중보기도를 다루는 설교 본문으로 흔히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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