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9편 15-1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시편 139:15-16
15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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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9편에서 시인이 모태에서 지어지기 전부터 하나님이 자신을 보셨고 생애의 날들을 주의 책에 기록하셨다고 고백하는 대목이다. 섭리·예정 논의와 태아 생명 문제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시편 139편은 표제에서 다윗의 시로 소개되는 기도시다. 시인이 하나님께 "주"라고 부르며 직접 말하는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흐름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 1-6절: 하나님이 자신을 속속들이 아신다.
- 7-12절: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
- 13-18절: 모태에서 자신이 지어진 일을 노래한다.
- 19-24절: 악인에 대해 탄원하고 "나를 살피사"라는 간구로 마친다.
15-16절은 13절의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를 이어받는다. "은밀한 데"와 "땅의 깊은 곳"은 흔히 모태를 가리키는 시적 대구(짝을 이루는 표현)로 이해된다. "형질"로 옮긴 히브리어 '골렘'은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낱말이다.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은 덩어리, 곧 태아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석
- 섭리와 작정의 읽기: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를 하나님이 한 사람의 생애를 미리 정하셨다는 고백으로 읽는다. 그래서 섭리(세상을 다스리고 돌보심)와 작정(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을 설명하는 근거 구절 가운데 하나로 든다.
- 예지와 돌보심의 읽기: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쪽에서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사람을 태어나기 전부터 아시고 돌보신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사람의 모든 선택이 미리 정해졌다는 결론으로 넓히는 데에는 신중하다.
- 시적 찬양으로 보는 읽기: 성서학자들 가운데에는 이 대목을 교리 진술이 아니라 경탄의 시로 보는 이가 많다. 이들은 "책"을 하나님의 기록이라는 구약의 익숙한 표상으로 설명한다. 출애굽기 32:32, 시편 56:8, 시편 69:28에도 같은 표상이 나온다.
- 생명 윤리의 읽기: 태아도 하나님 앞에 알려진 존재라는 근거로 인용된다.
논쟁과 쟁점
- 번역 문제: 16절은 히브리어 문법이 까다로워 무엇이 책에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갈린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정한 날"이 기록되었다고 옮긴다. 반면 영어 킹제임스역은 몸의 지체가 기록되었다고 옮겼다. 마소라 본문(히브리어 구약의 표준 본문)에는 '아니'로 읽는 본문 표기와 '그를 위하여'로 읽으라는 난외 독법이 함께 전해진다. 이 때문에 번역본마다 문장 구성이 다르다.
- 태아 논의에서의 인용: 낙태를 반대하는 쪽은 이 구절이 태아를 하나님과 관계 맺는 '나'로 부른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반면 시적 표현에서 인격이 언제 시작되는지를 끌어내는 것은 문맥을 넘어선 적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 숙명론 문제: "정한 날"을 수명이나 인생사가 바꿀 수 없게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으로 읽는 데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이는 예정과 자유의지 논의와 이어진다.
한국 교회에서
태아와 산모를 위한 기도, 출산·돌·생일 축복 등 가정 행사 예배에서 자주 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태 문제를 다루는 설교와 교계 논의에서도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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