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귀츨라프
인물 · 같은 말: 귀츨라프
칼 귀츨라프(1803~1851)는 프로이센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이다. 1832년 영국 상선을 타고 충청도 고대도 근처에 머물렀으며, 조선 땅을 밟은 첫 개신교 선교사로 꼽힌다.
생애
1803년 프로이센의 포메라니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독일 경건주의(교리보다 개인의 신앙 체험과 경건한 삶을 중시한 개신교 운동)의 영향 아래 선교사 교육을 받았다. 이후 네덜란드의 선교 단체에서 파송되어 동남아시아에 사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했다. 중국어에 능통해 1830년대에는 중국 해안을 오가는 서양 배의 통역관과 의사로 일하며 전도 문서를 나누어 주었다. 뒤에는 홍콩의 영국 당국에서 중국어 통역관으로 일했고, 1851년 홍콩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에 통역관 겸 의사로 탔다. 이 배는 조선 서해안에 이르러 충청도 홍주 앞바다의 고대도(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근처에 한 달 가까이 머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행은 조선 조정에 통상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동안 귀츨라프는 한문 성경과 전도 문서를 나누어 주었다. 주민들에게 약을 주었고 감자 심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써 주고 조선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한글로 옮겼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항해의 일은 그가 쓴 중국 해안 항해기에 실려 서양에 소개되었다.
중국에서는 성경 번역과 문서 전도에 힘썼다. 또 중국인 전도인을 길러 내륙에 보내려는 단체를 세웠다. 유럽에 중국 선교의 필요를 널리 알렸고, 이 일은 여러 선교 단체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귀츨라프의 방문은 1866년 로버트 토마스보다 30여 년 앞선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그를 조선을 처음 찾은 개신교 선교사로 기억하고, 한국 개신교 역사를 그에게서부터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과 주기도문을 조선 사람에게 전했다는 점은 한국 선교사의 출발점이자 한글 성경 번역의 아주 이른 흔적으로 의미 있게 다루어진다. 고대도에는 그의 방문을 기리는 기념물과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
긍정적 평가: 귀츨라프는 중국어 문서 전도와 현지인 전도인 양성을 일찍 시도한 개척적 선교사로 평가된다.
비판: 다음과 같은 비판도 있다.
- 그가 통역으로 탔던 배 가운데 아편 무역과 관련된 배가 있었다.
- 아편전쟁 때 영국 측 통역으로 일해 식민주의와 선교의 관계를 보여 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 그가 세운 중국인 전도 단체에서는 보고된 회심자와 활동 실적이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논란이 되었다.
'선교사'라는 호칭을 둘러싼 견해: 조선 방문이 짧았고 통상을 목적으로 한 배에 동승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를 '조선 선교사'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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