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김동명 (목사)

인물 · 같은 말: 김동명 목사

김동명은 평안북도 철산 출신의 침례교 목사이다. 195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침례교회를 개척해 미국 남침례회 안에서 한인 목회의 기틀을 놓았으며, 신사참배 반대 운동가 안이숙의 남편이다.

생애

평안북도 철산에서 목사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고베의 공업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안이숙도 미국으로 갔는데, 두 사람은 미국에서 결혼했다. 결혼한 뒤에는 미국 여러 교회를 돌며 말씀을 전했다. 텍사스에 있는 남침례회 계열 신학교를 졸업했다. 정확한 생년과 몰년은 확인된 자료가 부족하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시인 김동명과는 다른 사람이다.

사역과 업적

  • 한인 침례교회 개척: 1957년 미국 남침례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에서 한인을 위한 첫 국내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 한인침례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에서 30년 넘게 담임목사로 섬긴 뒤 은퇴했다.
  • 유학생 돌봄: 미국에 있을 때 그의 교회와 집은 '동명식당'이라 불렸다. 고향을 떠나 외롭게 지내는 한인 유학생들을 아내 안이숙과 함께 먹이고 돌보았기 때문이다.
  • 교단 활동: 미국 남침례회는 그를 대표적인 한인 목회자로 인정했다. 그는 1964~1965년 남침례회 캘리포니아 주총회 부회장, 1981~1982년 미국 남침례회 전국 총회 부회장을 지냈다. 1982년에는 미주 남침례회 한인교회 총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 은퇴 이후 목회: 1989년 팔로알토의 버클랜드 침례교회(지금의 새누리교회)에 2대 담임목사로 청빙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70대의 나이에 한국으로 돌아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새누리침례교회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계 언론은 그가 남미와 한국, 미국에서 모두 25개 교회를 개척했다고 전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김동명은 미국 남침례회 안에서 한인 이민 교회가 자리 잡는 데 앞장선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세운 로스앤젤레스 한인침례교회는 초기 미주 한인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 교단 지도부에 한인 목회자로 처음 참여한 일과 한인교회 총회를 조직한 일은 뒤이은 한인 침례교 목회자들의 활동 기반이 되었다. 아내 안이숙의 간증 집회와 저술 활동을 곁에서 도운 일도 함께 언급된다. 안이숙은 「죽으면 죽으리라」 등을 펴냈다.

평가

그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교계 신문의 추모 기사나 아내 안이숙에 관한 글 속에 있다. 그래서 교회 개척과 섬김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미주 한인 언론은 그가 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 살며 길을 잃은 신자들을 품는 목회에 힘썼다고 적었다. 그에 대한 알려진 비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생몰연도, 학력, 개척한 교회 수 같은 기본 사실은 교계 보도에 기대고 있어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5곳
  1. 고 김동명 목사, 새누리교회등 침례교 성장에 큰 발자취 - 미주 한국일보
  2. 안이숙 (1908년) - 위키백과
  3. 여성독립운동가 안이숙 - 침례신문
  4. [신간] 안이숙 휴먼 스토리 - 크리스천투데이
  5. 죽으면 죽으리라. 안이숙 사모이야기 - 하늘정원교회 블로그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6

🚩 이 문서에 문제가 있나요? 신고하기

로그인한 뒤 신고할 수 있습니다. 신고된 내용은 24시간 안에 검토합니다.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

    로그인하고 토론에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