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벨
인물 · 같은 말: 배유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 이름은 배유지이다. 목포와 광주에 선교부를 세웠고, 교회·학교·병원을 열어 '호남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생애
1868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계 장로교 집안에서 자랐다. 1891년 센트럴대학을 졸업한 뒤 유니언신학교와 루이빌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이어 미국 남장로교의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함께 선교사로 임명된 로티 위더스푼(Lottie Witherspoon)과 결혼했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남장로교가 두 번째로 보낸 선교사 일행에 끼어 1895년 4월 제물포에 도착했다. 이때 나이는 27세였고, 한국 이름은 배유지로 지었다.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전라남도 개척을 맡았다. 1896년 나주에 선교 거점을 세우려 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목포로 옮겼다. 목포에서 일하던 중, 그가 전주에 가 있는 사이 첫 부인 로티가 세상을 떠났다. 뒤에 군산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윌리엄 불의 누나 마거릿 불(Margaret Bull)과 다시 결혼했다. 마거릿은 1919년 3월 경기도 병점 건널목에서 일어난 사고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은 1925년 9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지금의 호남신학대학교 안)에 묻혔다.
사역과 업적
- 목포: 목포선교부를 세웠고, 전남 지역 첫 교회로 꼽히는 양동교회가 서는 데 관여했다.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도 세웠다.
- 광주: 1904년 의료 선교사 오웬과 함께 광주로 옮겨 양림동에 선교 거점을 마련했다. 그해 12월 25일 임시 사택에서 주민들과 40여 명이 함께 성탄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광주 지역 첫 교회인 양림교회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 교육과 의료: 광주에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1908)를 세웠다. 광주 첫 병원인 제중병원(지금의 광주기독병원)도 열었다.
- 교회 개척: 광주·전남 곳곳에 20여 개 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광대교회도 그를 설립자로 기린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벨이 세운 목포·광주 선교부는 남장로교가 호남 지역에서 선교하는 거점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모여 살던 광주 양림동은 '서양촌'이라 불렸고, 오늘날에는 근대 역사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집안은 언더우드 집안과 함께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한 집안으로 꼽힌다. 후손들이 그의 이름을 딴 유진벨재단을 세워 북한 결핵 환자 지원 같은 인도적 활동을 해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살던 사택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탔다가 복원되어 2016년 유진벨 선교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 양림동 묘역에는 오웬, 서서평 등 다른 선교사들도 함께 묻혀 있다.
평가
벨은 흔히 '호남 선교의 아버지', '광주·전남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와 동료 선교사들이 교육과 의료를 선교와 함께 들여와 광주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평가가 있다. 그가 세운 교회와 학교들은 지금도 그를 설립자로 기리며 그 정신을 잇겠다고 밝히고 있다. 벨 개인을 겨냥한 뚜렷한 비판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9곳
- 광주에 온 벽안의 선교사, 유진벨 (WEBZINE ACC)
- 폭풍 같은 위기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선교 사명 (아이굿뉴스)
- 선교사열전 ⑬ 유진벨 선교사 (고신뉴스 KNC)
- 광주양림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외국인 선교사 정착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순천 촌놈 인요한 (주간한국)
- 영광대교회 120년 세월은 다시 복음으로 (기독신문)
- 유진벨(Eugene Bell); 배유지 (영광신문)
- 유진벨(배유지), 오웬, 서서평 선교사 묘지 (배성수성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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