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트무테 도로테아 폰 로이스
인물 · 같은 말: 에르트무테 도로테아 폰 친첸도르프
에르트무테 도로테아 폰 로이스(1700~1756)는 독일 경건주의 시대의 백작 부인이자 찬송 작사자이다.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의 첫 아내로, 헤른후트 공동체의 살림과 재정을 맡아 모라비아 형제단을 뒷받침했다.
생애
에르트무테 도로테아는 1700년 11월 7일 에버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오늘날 독일 튀링겐주에 속한다. 혼인 전 성은 로이스(Reuß)이다. 아버지는 로이스-에버스도르프 백작 하인리히 10세(1662~1711)이다. 로이스-에버스도르프 백작 가문은 경건주의(17~18세기 독일 루터교 안에서 개인의 회심과 경건한 생활을 강조한 신앙 운동)와 가까운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1722년 니콜라우스 폰 친첸도르프와 혼인했으며, 이후 '친첸도르프 백작 부인'으로 불렸다. 그래서 '에르트무테 도로테아 폰 친첸도르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부부 사이에 여러 자녀가 태어났지만 상당수가 어려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56년 6월 19일 헤른후트에서 세상을 떠났고, 헤른후트 공동묘지(고테스아커)에 묻혔다. 친첸도르프는 이듬해 안나 니치만과 재혼했다.
사역과 업적
친첸도르프가 혼인하던 무렵, 모라비아(지금의 체코 동부)에서 박해를 피해 온 개신교 피난민들이 친첸도르프의 영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난 마을이 헤른후트이며, 이 공동체가 갱신된 모라비아 형제단의 중심이 되었다. 친첸도르프는 설교와 여행, 해외 선교 지원으로 자주 영지를 비웠고, 1736년 무렵에는 작센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그동안 에르트무테 도로테아는 영지와 공동체의 살림, 재정을 맡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형제단의 공동생활과 선교 활동이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또 그녀는 교회 찬송가 작사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독일 경건주의자이자 찬송 작사자로 소개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에르트무테 도로테아가 한국 교회에 직접 끼친 영향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뒷받침한 모라비아 형제단은 존 웨슬리의 신앙 체험 등을 통해 감리교 운동에 영향을 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감리교·성결교 전통을 다루는 교회사 교육에서 모라비아 형제단이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평가
교회사에서 그녀는 대개 친첸도르프의 그늘에 가려 짧게만 언급된다. 하지만 지도자가 자주 자리를 비운 공동체에서 실무와 재정을 맡아 헤른후트를 유지한 인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반면 그녀의 개인적인 신앙 활동이나 공동체 안에서 맡은 구체적 역할을 보여 주는 한국어 자료는 많지 않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함께 보기 6
참고한 자료 2곳
- Erdmuthe Dorothea von Zinzendorf (1700-1756) - Sächsische Biografie
- Erdmuthe Dorothea von Reuß-Ebersdorf von Zinzendorf (1700-1756) - Find a Grave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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