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버텀리 홀
인물 · 같은 말: 메리언 홀, Marian Bottomley Hall
매리언 버텀리 홀(Marian Bottomley Hall)은 영국 출신 의사이자 감리교 의료 선교사이다. 일제강점기에 남편 셔우드 홀과 함께 황해도 해주에서 진료와 결핵 퇴치 사업을 했다.
생애
영국에서 태어난 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자랐고,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해 의사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과 결혼했다. 셔우드 홀은 조선에 온 의료 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 부부의 아들이다. 두 사람은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1920년대 중반 조선에 왔고, 황해도 해주에 자리를 잡았다.
일제 말기 선교사들에 대한 일본 당국의 압박이 심해졌다. 1940년 무렵 셔우드 홀이 간첩 혐의를 받는 일이 생겼고, 부부는 이 일을 계기로 조선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에는 인도로 옮겨 결핵 요양 시설에서 의료 선교를 이어 갔다. 은퇴한 뒤에는 캐나다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1991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시부모 윌리엄 제임스 홀·로제타 홀과 함께 묻혔다.
사역과 업적
- 해주 의료 선교: 남편과 함께 해주의 감리교 선교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다. 당시 감리교 선교부는 병원·학교·교회를 함께 운영하며 의료 선교를 전도 사역과 함께 펼쳤다.
- 결핵 퇴치 사업: 그때 조선에서 결핵은 사망률이 높은데도 치료 시설이 거의 없는 병이었다. 셔우드 홀은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세웠고,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1930년대 초 조선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다. 매리언 홀은 의사로서 이 사업에 함께한 동역자였다.
- 인도 사역: 조선을 떠난 뒤에도 인도에서 결핵 환자를 돌보며 의료 선교를 계속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홀 집안은 시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부터 시작해 2대에 걸쳐 한국에서 의료 선교를 한 가문으로 한국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매리언 홀은 그 2대째 사역에서 남편과 함께 진료와 결핵 퇴치에 힘썼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의료계는 크리스마스 씰과 해주 결핵 요양원을 기독교 의료 선교가 한국 보건 역사에 남긴 대표적인 공헌으로 꼽는다. 부부가 양화진에 묻힌 일은 한국을 '고향'으로 여긴 선교사 가족의 사례로 자주 소개된다.
평가
그는 주로 셔우드 홀의 동역자이자 아내로 언급된다. 그래서 그가 개인으로서 맡은 진료 분야나 구체적인 활동은 남편이나 시어머니 로제타 홀에 비해 덜 기록되었다. 선교사 아내들의 역할이 남편의 사역 안에 묻혀 온 초기 선교 기록의 한계를 보여 주는 사례로 볼 수도 있다. 그에 대해 따로 제기된 비판은 알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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