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우드 홀
인물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은 서울에서 태어난 캐나다 국적의 감리교 의료 선교사이다. 황해도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세웠고, 1932년 한국 첫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다.
생애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은 미국 감리회의 의료 선교사였고, 어머니는 로제타 홀이다. 홀 가족은 2대에 걸쳐 한국에서 의료 선교를 한 캐나다 선교사 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셔우드 홀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인 아내 매리언 버텀리 홀과 함께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와 황해도 해주를 중심으로 일했다.
1940년 일본 헌병대에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고, 그 뒤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국을 떠난 해는 자료에 따라 1940년 또는 1941년으로 적혀 있다. 이후 인도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1963년 은퇴하였다.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98세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부모가 묻힌 서울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었다.
사역과 업적
- 결핵 요양원 설립: 1928년 해주에 한국 첫 결핵 요양소로 알려진 해주구세요양원을 세웠다. 당시 결핵은 가장 큰 전염병이었다. 문을 연 뒤 1933년까지 약 5년 동안 2,300명가량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 크리스마스 씰 발행: 1932년 12월 3일 요양원 운영비를 마련하고 결핵을 알리기 위해 한국 첫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다. 씰은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려고 우편물에 붙이는 기념 딱지이다. 처음에는 거북선 도안을 준비했으나 일본 당국이 승인하지 않아 남대문 도안으로 바꾸었다는 연구가 있다. 1940년에 찍은 씰은 군 당국에 모두 압수되었고, 홀이 한국을 떠난 뒤 국내 씰 발행은 1949년에 다시 시작될 때까지 끊겼다.
- 인도 사역: 인도에서도 결핵 퇴치에 힘썼고, 한국에서처럼 결핵 씰 모금 사업을 일으켰다.
- 저술: 한국 선교 시절을 회고한 영문 책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를 1978년에 냈다. 이 책은 1984년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셔우드 홀의 활동은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진 감리교 의료 선교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가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은 해방 뒤 다시 발행되어 오늘날까지 연말 결핵 퇴치 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도 선교사의 공헌을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소개된다. 양화진에는 부모와 누이, 아내를 비롯한 홀 가족이 함께 묻혀 있어 한국 감리교 역사와 내한 선교사 역사를 돌아보는 장소가 되었다.
평가
2대에 걸쳐 한국인에게 봉사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받은 해는 자료에 따라 1983년 또는 1984년으로 적혀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장례는 대한결핵협회장으로 치러졌다고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는 그의 씰 발행 과정을 통해 일제의 검열과 통제를 살펴보는 연구도 나왔다. 강원도 고성군은 화진포에 셔우드 홀과 로제타 홀을 기리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에 대해 널리 알려진 비판은 확인되지 않는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7곳
- 셔우드 홀 (1893년) - 위키백과
- 우리나라 최초로 실 발행/셔우드·홀박사 타계 - 한국일보
-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 복합문화공간, 화진포에 생긴다 - 국민일보
- 일제침략기 선교사 셔우드 홀과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본 한일관계에 대한 고찰 - KCI
- "북한 해주에 '결핵병원' 건립하겠다" - 이데일리
- Non-postal Archives - Korea Stamp Society
- 셔우드 홀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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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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