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홀
인물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은 미국 감리교 의료 선교사이다. 1890년 조선에 와 40여 년 동안 여성 진료, 여성 의사 양성, 시각장애인 교육에 힘썼다.
생애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1865년 미국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감리교 의료 선교사이다. 지금의 드렉설 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어지는 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890년 조선에 와서 메리 스크랜턴이 세운 여성 전용 병원 보구여관에서 일했다. 보구여관은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뿌리가 된 곳이다.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은 의사이자 목사이다. 미국 뉴욕의 빈민가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조선에 와서 평양 선교를 처음 개척했다.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제타 홀은 남편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를 남겼다. 아들 셔우드 홀도 의사가 되어 한국에서 결핵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사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제타 홀은 서울과 평양에서 40여 년 동안 일했다. 자료에 따라 그 기간을 43년 또는 44년으로 적는다. 1951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고, 홀 가족은 서울 양화진 묘역에 묻혀 있다.
사역과 업적
- 여성 진료: "여성에 의한 여성의 치료"를 강조했다. 화상을 입은 소녀에게 자기 팔의 피부를 떼어 이식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본 다른 선교사와 환자 가족도 피부를 내주었다고 한다.
- 여성 의사 양성: 박에스더의 미국 유학을 도왔다. 박에스더는 조선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서양 의학을 배운 의사가 되었다. 1928년 9월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학교육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세웠다. 이 학교는 오늘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어진다.
- 시각장애인 교육: 평양에 맹아학교를 세웠다. 한글 점자를 처음 사용했고 한글 점자 교재를 만드는 데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세운 기관: 고려대학교의료원에 따르면 로제타 홀은 여러 기관을 세웠다. 여성 전용 병원·소아과 병원·간호학교가 각각 2곳, 결핵병원·맹아학교·농아학교·고등학교·초등학교가 각각 1곳이다.
- 기록: 조선에 처음 왔을 무렵 쓴 32m 길이의 두루마리 편지가 있다. 직접 찍은 사진 59장이 붙어 있으며, 국가기록원과 양화진기록관이 복원해 공개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로제타 홀의 활동은 초기 감리교 선교가 복음 전도와 함께 병원과 학교를 세운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여성과 장애인처럼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일을 선교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의료 선교와 장애인 사역의 초기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이 의료와 교육을 거쳐 한국 사회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할 때도 대표적인 예로 든다.
평가
로제타 홀은 한국 근대 의료와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그를 학교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기념한다. 로제타 홀 개인에 대한 두드러진 비판이나 논쟁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4곳
- 고려대 의과대학의 초석을 놓은 미국인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고려대학교의료원)
- 로제타 셔우드 홀 - 위키백과
-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선구자, 로제타 홀 선교사 (미래한국)
- 美 의료선교사 로제타 홀, 136년 전 조선 기록한 32m 친필 편지 복원 공개 (Fait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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