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베어드
인물 · 같은 말: 배위량
윌리엄 마틴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 1862~1931, 한국 이름 배위량)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이다. 부산·대구 지역 초기 선교에 참여했고, 1897년 평양에 숭실학당을 세워 숭실대학교와 숭실중·고등학교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생애
1862년 6월 16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하노버 대학을 졸업하고 1888년 맥코믹 신학교를 마쳤다. 하노버 대학 동문인 새뮤얼 마펫도 같은 시기에 한국 선교에 나섰다.
1890년 12월 애니 로리 애덤스와 결혼했다. 같은 해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로부터 조선(한국) 선교사로 임명받았고, 1891년 한국에 왔다. 1891년부터 1897년까지 서울·부산·대구 선교지부(선교부가 지역마다 둔 거점)에서 일했다. 1897년 평양으로 옮긴 뒤 줄곧 교육 사업에 힘썼다. 1931년 숭실 관련 학교의 개교 행사에 참석하고 한 달쯤 뒤 장티푸스에 걸려 평양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역과 업적
- 영남 지역 선교: 처음 맡은 선교 구역은 부산이었다. 1896년 무렵까지 경상도 일대를 돌며 전도했고, 대구에 선교지부를 여는 데 앞장섰다.
- 숭실학당 설립: 1896년 말 선교부가 교육 사업을 맡기자 잠시 서울에서 사랑방 교실을 열었다. 이어 평양으로 가서 1897년 10월 10일 신양리 사택의 사랑방에서 학생 13명으로 숭실학당을 시작했다. 학비가 없는 학생도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 안에 일하며 배우는 공작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연합 대학 설립: 1906년 감리교 선교부와 힘을 합쳐 대학 과정을 열었다. 이 학교는 흔히 합성숭실대학이라고 부르며, 베어드는 1915년까지 초대 학장을 지냈다.
- 부인 애니 베어드도 선교사로 함께 일했다. 두 아들 윌리엄 베어드 2세와 리처드 베어드도 뒤에 한국에서 북장로교 선교사로 일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숭실은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세운 초교파 연합 교육기관이다. 한국에서 근대 대학 교육이 시작된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베어드는 학교 교육의 목적을 교회 지도자를 길러 내는 데 두었다. 그는 1908년 졸업식에서 학생들의 신앙을 길러 복음을 전할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기르는 일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숭실의 학맥은 오늘날 서울의 숭실대학교와 숭실중·고등학교로 이어진다.
평가
숭실 쪽과 교계 언론은 그를 기독교 교육의 기초를 놓은 사람으로 평가한다. 일부 교계 언론은 그가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민족의 힘을 기르는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도 강조한다. 한편 그의 교육관은 학교를 무엇보다 전도와 교회 지도자 양성의 도구로 본 것이 특징이다. 이 점은 일반 교육을 넓히는 것보다 신앙 교육을 앞세운 선교 교육관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의 생애는 아들 리처드 베어드가 1968년에 쓴 전기를 통해 알려졌다. 이 책은 2004년 『배위량 박사의 한국선교』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11곳
- 윌리엄 M. 베어드 - 위키백과
- William M. Baird - Wikipedia
- Guide to the William M. Baird Papers -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 Guide to the Baird Family Papers -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 William M. Baird Papers - PHS Digital
- Rev. Dr. William Martyn Baird - HMdb
- (6)숭실중고등학교 - 기독신문
- [최석호의 골목길 역사산책] 베어드 가문 2대 - 기독신문
- [역사기획] 교육으로 한국 일으킨 윌리엄 베어드 - 기독신문
- 숭실중학교 - 위키백과
- 한국기독교 선교사 베어드(배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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